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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n 21. 2022

벗어나고파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윤시내가 부른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는 흔히 '벗어나고파'라는 임말의 제목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노래이다. 1985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마침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본가인 대구를 벗어나 포항에서 난생처음으로 외지 생활을 시작한 바로 그 해에 크게 유행한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1979년에 발표한 '열애'를 통해 윤시내는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열어가기 시작하는데, 그녀가 부른 '열애'는 가요사적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애절하고 처절한 사랑 노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사람들의 심금(心琴)울린 절창(絶唱)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그런데, 뜬금없이 윤시내의 '벗어나고파'를 이 글 속으로 소환한 것은, 오늘, 그것도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갑작스레 만날 약속이 이루어지게 된 번개모임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앞, 재래 상가의 막걸리 주막에서 나이가 위로 띠동갑인 박 교장 선생님과, 작년 10월 정년을 한 주 프로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마련된 것인데, 이 두 사람은 10년 가까이 골프 동호인 모임을 통해 가깝게 지내고 있는 분들이다.


미주구리 회와 파전을 안주 삼은 오늘 막걸리 파티의 주된 화제는 단연 사진과 글쓰기였다. 교직에서 은퇴한 후 인생 2막을 열면서 처음 사진을 시작한 박 교장 선생님은, 타고 난 감각과 열정으로 각종 사진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한국사진작가협회의 정식 추천작가가 되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 초등학생들을 보살펴 온 경험을, 맑고 순수한 감성으로 녹여 쓰는 솜씨 또한 대단해서 뭇 회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 하다.


막걸리 네 병이 비워질 때까지 사진과 문학을 주제로 거침없이 이어지던 토론은 다음 주에 있을 월례회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자연럽게 화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동호회 모임이 침체되어 있던 중, 지난달 월례회는 동해안 길을 따라 반나절을 걷고 난 후 식사를 함께 하는 행사로 대신했었다.  달 월례회 역시, 지난번 걸었던 동해안 길 종착지로부터 출발하자고 미리 약속했었기에, 죽천 신항만으로 이어지는 굽이진 바닷길을 따라 걷는 행사로 한번 더 대신할 것이다.


결국, 걷는 길만 약간 다를 뿐 다음 주 있을 월례회도 지난달 행사가 되풀이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만 마음속 꾹꾹 눌러둔 유랑 벽이 도지고 말았다. 다시 말해, 포항이라는 국지적(局地的) 울타리를 벗어나 조금 더 먼 지역으로 함께 여행하고픈 마음을 슬쩍 내비쳐 본 것인데, 일단은 두 분 생각 모두 그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회원들의 동의를 구해 미리 결정해 둔 행사이기에 이제 와서 번복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몸을 은근히 달구고 있는 취기가 문제였다. 벗어나고픈 것이다. 탈피(脫皮)하는 애벌레의 심정으로, 일상을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포승(捕繩)에서 잠시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고 만 것이다.


시장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 순간, 느닷없이 떠오른 윤시내의 '벗어나고파'는 갈림길에서 길을 달리해 집 앞에 이를 때까지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토록 마음속을 휘젓고 있는 심화(心火)의 정체는 도대제 무엇이란 말인가.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한번 흔들린 마음은, 막걸리의 취기가 슬슬 더해지자 이내 아득한 잠의 나락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소파에 몸을 구겨 넣은 채, 펼친 손가락을 눈앞에서 오그려 본다. 그저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주먹으로 쥐어지는 손가락 사이의 감촉과, 마찰로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듣기에 기분이 좋다. 세포 하나하나가 되살아나고 있는 느낌, 술에서 막 깨어난 백수의 하루가 이렇저물고 있다.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by 윤시내)

한 줌의 미련을 움켜쥐고
우러러 그리움은 맺혀있고
희미하게 멀어질 사연 이건만
때때로 폭풍처럼 뜨겁게 휘져가네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지쳐버린 내 영혼 조금씩이라도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지나간 어줍잖은 사연일랑
성난 파도야 삼켜버려
옛 사연에 휘말려 복받쳐 울어도
떠밀리는 세월에 그 사람 떠나갔네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지쳐버린 내 영혼 조금씩이라도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한 줌의 미련을 움켜쥐고
우러러 그리움은 맺혀있고
희미하게 멀어질 사연 이건만
때때로 폭풍처럼 뜨겁게 휘져가네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헝클어진 내 영혼 하나씩이라도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지쳐버린 내 영혼 조금씩이라도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https://youtu.be/jy0knWFyBko

(故 이주일 님이 사회를 본 쇼에서 노래 부르는 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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