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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n 17. 2022

김천(金泉) 이야기

인현왕후(仁顯王后) 길

여행 첫날의 숙소로 예약을 해 둔 곳은 무흘구곡의 구곡인 용추 계곡이 바로 발치에 있는 용추 민박이었다. 만귀정에서 차로 40여분을 계곡을 따라 달리니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오고 바로 쪽 편이 민박촌이었다. 주차를 도우려고 나온 사장님의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이 호남형인 데다, 잇몸을 만개하고 환히 웃는 미소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새로 지은 듯 보이는 별채 두 곳에 각각 여장을 풀고, 미리 저녁 식사로 주문해 놓은 닭불고기를 먹으려 안채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부추전을 안주삼아 오래간만에 자리를 함께 한 즐거움을  막걸리로 힘차게 건배했다. 마침, 건너편에서 식사를 마친 일행들이 유리 칸막이를 통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실내로 자리를 옮기는데, 그 방은 노래방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진 곳이었다. 사장님 말을 빌면, 형제계에서 부부가 함께 이곳으로 놀러 온 것이라는데, 과연 중장년을 아우르는 연령층이 위아래로 다양해 보였다.


새로 내 온 촌두부를 안주로, 몇 순배 잔이 더 돌아가자 슬금슬금 취기가 올라왔다. 흥을 더해가는 노랫소리와 발아래로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가 뒤섞여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었지만 크게 불편하거나 거북하지는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오랫동안 애써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아니었던가. 염치를 무릅쓰고 부르는 쪽이든, 마음속으로 따라 부르며 이를 듣는 쪽이든 구수한 트로트 가락이 흥겹기는 매한가지였다.


수박을 성둥성둥 썰어 후식으로 먹고 나서 방으로 돌아오니 벌써 깊은 밤이었다. 각자 누울 자리를 펴다 말고, 잔뜩 부른 배를 보고 서로 상대방 배가 더 부르다며 격한 말씨름이 벌어졌다. 예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 배가 좀 더 나왔다 해서 큰 흉이 되지는 않을 것인데, 그만 서로 승부욕이 발동해버린 것이다. 결국, 각자 배만 드러나도록 이불과 요로 얼굴과 다리 아래를 가린 채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별채의 다른 방에 있는 마나님들에게 전송해서 순위를 매겨보기 위해서였다. 하나, 둘, 셋에 맞춰 사진을 찍을 찰나엔 몰래 숨을 참거나 들숨을 몰아쉬다 들켜서 서로 참을 수 없는 한바탕 웃음으로 자지러지기도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경연대회를 치르며 양보 없는 승부 속에 용추 계곡의 밤은 그렇게 아득히 깊어 갔다.


이른 아침의 바깥공기는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식사 전에 숙소 바로 아래에 있는 용추 폭포를 다녀오기로 했다. 출렁다리를 건너 '인현왕후 길'이라 이름 붙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한층 더 요란해졌다. 샛길로 나 있는 데크를 따라 잠시 아래로 내려가니 바로 눈앞으로 용추 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뭄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폭포의 수량(水量)이  여전해 보였는데, 상류 계곡의 산이 높고 깊어 굽이진 곳의 소(沼)마다 넉넉하게 물을 머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오솔길을 따라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인현왕후어제등록'을 설명하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인현왕후어제등록'은 조선 제19대 왕인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기사환국으로 폐서인이 되어 김천과 가까운 청암사에 3년간 은거를 하던 중에 갑술옥사로 시 왕후로 복위하면서 청암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 어제(御製)이다.


왕비에 책립 되고 나서도 후사를 잊지 못해 마음 졸이던 인현왕후는, 후궁이었던 장옥정이 왕자 윤()을 낳고 후일 원자(元子)로 책봉되어 희빈이 되면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세력의 몰락과 함께 폐서인이 되고 만 정치적 격변을 일컬어 기사환국이라 하는데, 폐출된 후 갑술옥사로 6년 만에 왕후로 복위하기까지 청암사 극락전을 거처로 3년을 은거하며 수도암을 오가던 길을 '왕비 길' 혹은 '인현왕후 길'로 불렀다 한다. 녹음(綠陰)이 우거진 숲길을 이어가며, 각고(刻苦)의 심정으로 지난(至難)한 세월을 보냈을 폐비 윤 씨의 한 서린 발걸음이 좇다 보니 되돌아갈 길이 아득해졌다. 9시에 아침을 먹는 것으로 안채에 일러두고 나선 길 그만 숙소로부터 한참 멀어지고 만 것이다.


수도암 가는 길 양쪽으론, 이른 아침 용추 계곡 아래서부터 길을 나섰던 등산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비탈길을 돌아 서둘러 올라오고 있었다. 차를 타고 편히 길을 오르는 것이 괜스레 미안해졌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수도암에 이르니, 처음 가졌던 생각이 틀려도 한참 틀렸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직지사의 말사가 청암사이고, 청암사에 속한 암자가 수도암이니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암자와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수도암은 수도승의 참선 도량으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본당인 대적광전, 약사전, 나한전과 관음전, 선원(禪院) 등을 두루 갖추고 있고, 지정문화제로 보물 제296호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 보물 제297호 수도암 삼층 석탑, 보물 제307호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다.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수도처(修道處)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칠일 간 춤을 췄다는 수도암은 청암사로 이어지는 '인현왕후 길' 샛길이 나 있는데, 아쉽지만 이 길을 걸어보는 것은 다음으로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불전(佛殿) 여닫이 문의 단청을 입힌 문양과, 단청을 입힌 처마 아래 가지런히 일렬로 열려 있는 덧문도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돌아서서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있는 자리로부터 멀리 보이는 가야산은, 마침 주변의 뭉게구름과 어울려 연꽃 봉우리 형상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둘러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청암사를 거쳐 직지사에서 점심을 먹도록 일정을 짜 두었기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불령산 아래, 청암사로 들어가는 길로 우회길을 택하지 않고, 일주문을 지나 옛날 길을 따라 걷는데 활엽수 그늘 아래의 운치가 상당했다. 비구니 사찰이기도 한 청암사로 이르는 길은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아름드리 소나무나 전나무가 우거져 있어, 주변의 무흘구곡과 '인현왕후 길', 수도암과 '국립 치유의 숲'을 한데 묶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경내에 들어서니 독경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고, 단아하게 승복을 입은 비구 스님이 불당을 오가며 불자들의 묻는 말에 친절하게 설법하는 모습이 보였다. 뜰안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찔레꽃이 마치 장미꽃처럼 활짝 피어 벌들을 유혹하고 있는데, 청암사의 전반적인 인상이 여기저기를 잘 가꿔놓은 화단처럼 아름답다는 것이다.


무흘구곡을 벗어나 직지사로 넘어가는 길은 굽이진 산길을 여러 번 돌고나서부터였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이곳으로 놀러 온 적이 있었으나 주변이 변해도 너무 변해서 처음 온 거나 다름이 없었다. 주차장만 하더라도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는데 일요일 점심때여서인지 가는 곳마다 빈자리가 없었다. 직지사 초입의 1 주차장은 그런대로 주차 노면의 여유가 있고, 식당이나 상가가 몰려있는 곳이어서 그곳의 한정식 집을 점심 먹을 장소로 택했다.


원래는 직지사 경내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이틀 간에 걸쳐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모두들 피곤에 절어 있었다. 그래서 늦은 점심을 먹고 바로 귀가하는 것으로 일정을 수정하고 식당부터 들렀는데, 널리 소문나 있는 산채 정식을 먹어 보기 위해서였다. 산채 정식이라고는 하지만, 석쇠 불고기가 간장과 고추장 불고기로 나뉘어 함께 나오고 생선 구이에다 젓갈과 전, 각종 나물 무침이 산채에 곁들여 나오는 데다 여러 반찬과 나물 된장국, 누룽지까지 나오니 차림이 한 상에 그득했다.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맛 기행인지라, 먹을 때는 음식 하나하나를 두고 저마다 품평을 달리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표정들이었다. 수정과를 마지막 입가심으로 하고 식당 문을 나서니, 대구로 가는 서 원장과는 바로 갈길을 달리 해야 했다. 든든한 포항 식구로, 언제 어디를 가든 자리를 함께 해주는 그 마음이 늘 고맙기만 한 서 원장 부부였다.


김천 직지사를 끝으로 1박 2일의 여정이 마무리되었지만 이번 여행길에서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어도, 외국의 유명 관광지 못지않게 우리나라에도 둘러볼 만한 곳이 쌔고도 쌨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30년 이상을 객지인 포항에  터를 잡고 살며 지금까지 줄곧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들과, 그 이상으로 고마운 마나님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다가 잠시 숙질 때면 어떻게든 모임부터 먼저 가지려 했음에도 어쩔 수없이 약속이 취소되어 아쉽기 짝이 없었지만, 이제 다시 물꼬를 텄으니 이후로 있을 모임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7월 중순 모임은 여행보다는 포항과 가까운 펜션에서 친목을 다지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니, 외지로의 여행은 아마도 철을 넘겨야 할 것 같다.


처음으로 써 본 여행기이지만, 친구들이 함께 한 여행이어서 너무나 즐거웠다. 성주에서 김천으로 이어진 여행이, 앞으로 어디로 이어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되는 여행기로 그 여백을 알차게 메워가고 싶다.


그동안 친구들이 건강을 잃는 일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해 본다.



용추 폭포, 용소 폭포로도 불린다
무흘구곡의 구곡인 용추 계곡, 뒷편에 출렁다리가 보인다
수도암
수도암 경내
덧문의 문양과 단청
가지런히 일렬로 열려 있는 덧문과 처마의 단청
보물 제297호 수도암 삼층 석탑
도선국사 비(碑)
비로자나불 좌상 앞에서 바라 본 연꽃 모양의 가야산
청암사와 인현왕후의 얽힌 인연을 설명하고 있는 천왕문
청암사의 내력을 알리는 표지판
청암사 대웅전
대웅전의 단청
처마의 단청과 풍경(風磬)
아름닥게 핀 붉은 찔레꽃
비구 스님들의 선방(禪房)
청암사 부도탑(浮圖塔)
청암사에 안치되어 있는 부도(浮圖)
스님과 동자승(童子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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