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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14. 2022

보고 싶다, 친구야!

동네 울타리에 개나리가 노랗게 고, 산자락마다 진달래와 매화가 환하게 그 자태(姿態)를 드러낼 때쯤이면 불현듯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친구를 만난 곳은 50사단 방위병(防衛兵) 신병훈련소였다. 나와 성이 같아 내무반의 바로 옆자리에 배정되었는데, 나보다는 한 두 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날, 통성명을 하고 난 후 갑갑한 신병훈련소에서 생활하며 서로 의지를 하게 되었는데, 낯가림이 심했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바로 호탕(豪宕)한 기질의 이 친구였다.

하루 일과가 끝이 나면 내무반을 당직하는 구대장(區隊長)의 호출이 있을 때가 있다. 현역 하사관으로 훈련소 조교(助敎)이기도 한 그 사람 역시도 팔팔한 이십 대 청춘인 지라, 지난(至難)했던 시절의 소란스러운 세상 일이 무척 궁금했으리라. 갓 입소한 훈련병들 가운데 특별한 전력을 가졌거나, 훈련 중에 행동이 유달라 보이는 녀석들을 취침 후에 구대장실로 불러 모은 것인데, 4주간의 훈련 기간 중 두 주가 지난 월요일 저녁부터의 일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 점호(點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첫 호출 대상자로 나와 그 친구의 이름이 불렸다. 모(某) 지방대학 체육과에 재학하던 중 소집이 된 친구는 체육 전공자답게 모든 훈련을 별 어려움 없이 잘 견뎠고, 이에 반해 매 순간 힘들어하는 내게 기꺼이 한쪽 어깨를 내줄 만큼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었다. 당연히 훈련 외의 여러 가지 일도 함께 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고, 훈련생들 가운데서도 낭중지추(囊中之錐)였던 친구와 늘 붙어 다니던 나도 용케 구대장 눈에 띄었던 것이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구대장실로 들어서자, 탁자 위에 놓인 소주와 캔맥주, 새우깡 같은 스낵류 몇 봉지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훈련소에서 이런 술상을 영접하다니!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 김치 국물부터 먼저 마신 꼴이 아닌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목구멍 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가 손짓하는 대로 각자 자리를 잡으니, 잔을 채우며 하는 말이, 구대장인 자신을 솔선해서 돕고 있는 몇몇 훈련병을 위로해주고자 마련한 자리란다. 황송(惶悚)한 마음으로 어쩔 줄 모르는 우리들 앞으로 술잔이 건네 졌고, 몇 순배 잔이 더 돌고 나서부터는 견장(肩章)마저 떼어버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혈기방장 한 젊은이로 서로 의기를 투합하게 되었다.

친구의 주소지는 경주 서면 아화리로, 건천과 가까운 곳이다. 중학교에 다닐 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어 천애(天涯) 고아가 된 그는, 일가친지(一家親知)의 도움으로 근근이 학업은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방대학 체육과에 입학할 때는, 장학금과 사고 보상금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으나 그 이후로는 모든 삶이 고행의 연속이었다. 술집 삐끼나 음식 배달 등 험한 일 가리지 않고 온갖 일자리를 전전했는데, 그중 압권(壓卷)은 도굴꾼들을 따라 경상도 일대의 산야(山野)를 두루 헤매고 다닌 일이었다.


도굴이라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이름 모를 고분(古墳)이나 지체(肢體) 높은 사람들무덤을 미리 점찍어 두었다가 야음(夜陰)을 틈타 멀리서부터 몰래 땅굴을 파내려 간 후 매장된 유물을 슬쩍 침탈(侵奪)하는 행위떠올리겠지만,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오히려 훨씬 더 실감 나면서도 구체적이었다.


당시, 도굴꾼들이 주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연고가 없는 무덤이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아주 오래된 봉분(封墳)이었다. 말하자면, 시신과 더불어 생시 그 사람이 쓰던 유물을 함께 매장하던 풍습이 횡행(橫行)했던 곳이나, 고려장이 성했던 곳으로 지금까지도 회자(膾炙)되고 있는 지역을 골라 이를 집중적으로 도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문 도굴꾼의 조수로 따라나선 것인데, 이산 저산 헤매다가 의심 가는 곳에서 봉분이 발견되면 창살 같은 쇠꼬챙이로 이곳저곳 찔러본다. 무덤을 덮고 있는 토양이 오래되어 토질(土質)이 바뀌면 결국 부토(腐土)가 되고 마는데, 이런 부토는 쇠꼬챙이로도 수월하게 꿰뚫을 수 있어 고분임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도굴되는 매장물은, 주로 자기(瓷器)로 된 식기나 쇠붙이로 된 장신구들인데, 운이 좋으면 암거래(暗去來)가 될 정도로 값나가는 유물이 섞여 있어 가욋돈을 엄청 챙긴 적었다고 한다. 친구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무용담숨 죽여 듣다가, 결국 숨도 못 자고 바로 이어지는 기상(起床) 나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하루는, 아침 식사  세면대에서 식판을 닦고 나서 머리를 감고 있을 때였다. 비눗물을 헹구고 나니 바로 옆에 두었던 식판이 사라지고 없었다. 훈련병 사이에서 개인 보급품 도난당하는 일이 빈번하던 때라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있었지만 설마 하던 일이 그만 나에게도 벌어지고 만 것이다. 조교들이 몇몇 얼빠진 훈련병보급품을 몰래 감추고 난 뒤, 나중에 이를 적발하여 한 얼차려를 가함으로써 보급품 관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려 한다는 소문이 던 때였다. 눈앞이 캄캄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나를 보더니, 친구는 칫솔을 말없이 입에다 물고는 바로 옆 세면대로 건너갔다. 식기를 세면대 바닥에 두고 머리를 감고 있던 다른 훈련병의 식판을 감쪽같이 빼내고 있데, 마침 머리를 헹구고 나서 고개를 들던 그 녀석과 눈이 서로 마주쳤다. 화투판의 밑장 빠지사라지고 있는 식판을 보고 기겁해서 놈은 소리를 방방 질러댔다.


" , C발 새×야! 니 지금 뭐 하고 있노?"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혀 어리바리한 순간에도 아무 일 아닌 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친구가 그 녀석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런, C발! 입 좀 헹구려 는데, 식판 좀 빌리면 안 되냐?"


그러더니, 비눗물 흥건한 식판을 입에다 대고   꿀꺽 머금고는 그 물로 보란 듯 입 속을 요란스레 헹구는 것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나는, 위기가 수습되자 말자 친구의 소매를 끌고 한쪽으로 물러나 그만두라고 말렸다. 하지만, 친구는 부탁에도 아랑곳없이 잠시 다른 세면대를 기웃거리더니 기어코 식판 하나를 몰래 빼내 오는 것이었다.

 

훈련이 끝나고 나서 연고() 지역의 자대(自隊)배치 되었지만, 두어 달 후 주말을 이용해서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물론 우리 집을 먼저 찾아 준데 대한 고마움으로 답방(答訪) 한 것인데, 대구를 벗어나서 타지(他地)로 가려위수지역(衛戍地域) 이탈 같은 무서운 군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말하자면, 큰 용기를 내서 힘들게 찾아간 것인데 2월 초에 신병 훈련소를 입소해서, 4주 후에 훈련소 퇴소와 함께 자대 배치가 된 후 두어 달 가량이 지났을 때이니 아마 4말경이었던 것 같다.


 버스를 중간에서 갈아타고 미리 일러 준 정류장에서 내리니,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짐자전거의 뒷자리에 타고 양쪽이 과수원 비포장 사잇길을 한참 달리니, 산 아래쪽에 얼핏 아담한 슬레이트 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는 길에 손짓으로 알려준 자신의 복숭아밭인상적이었지만, 사람 손길제대로 닿은 잘 정돈된 살림살이 역시 눈길을 끌었다. 담대신해서 심어놓은 대나무 울타리 안쪽 평상(平床)에 걸터앉으니, 때맞춰 불어 온 바람에 댓잎이 흔들리며 서걱서걱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그날 저녁, 막걸리를 마셔가며 우리는 밤이 이슥할 때까지 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다 졸업까진 한 학년만을 남기고 있었는데, 친구의 유일한 바람은 취업할 때까지 부모님이 물려주신 과수원과 이 집을 생활비나 학비 등의 생계비(生計費)손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란다. 훈련소서 함께 지낼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친구의 어른스러움에 압도(壓倒) 되어 취중임에도 행동과 말을 가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지 서너 해가 지날 때까지는 서로 연락이 닿았던 듯하다. 친구는 졸업 후 경주지역에 지사를 둔 유명 제과회사의 빙과류(氷菓類) 물류센터에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로의 행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지역에 있는 대기업의 지사에 입사를 한 이유가, 그날 친구가 취중에 밝혔듯이, 자신의 거처를 멀리 벗어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기인(起因)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봄이 이맘때쯤에 이르면, 화사한 꽃 소식과 함께 마음 저편 깊은 곳에서 그리움이 큰 울림이 되어 늘 떠오르는 사람있다.


'태동아,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보고 싶구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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