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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13. 2022

음지의 그늘

그 골목길

어릴 적 내가 살던 골목길은 그림자가 둘인 사람들모여 살던 곳이다. 물론 볕이 잘 드는 낮이야 어딜 가든 제 그림자가 뒤를 따르지만, 이 골목길엔 어두운 밤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 그 그림자는 살갗이 찢어져 드러난 상처처럼 도드라졌다가는, 가슴에 낙인으로 찍힌 주홍글씨와 같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굴레가 되기도 했다.


볕이 잘 들지 않는 골목은 양손을 벌리면 닿을 만큼 좁다란 길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길을 스치듯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심한 얼굴서로를 바라볼 뿐, 설령 한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는 스스로 나서서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는 듯 지극히 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준호였다. 처음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가 네 살이었으니 해가 두 번 바뀐 지금 여섯 살로, 예쁘장한 엄마를 닮아서인지 무척 귀여우면서도 표정이 해맑은 아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로 달려와 안기는데, 얼굴엔 깨알 같은 주근깨가 나 있어 환하게 웃을 때마다 햇빛을 받은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것이 꼭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준호 아빠는 늘 말이 없었다. 삼십 대의 당당한 체구에 눈빛이 날카로운 그는, 아래로 돌보고 있는 동생들에게 문간방 하나를 내주고 함께 살았는데, 말이 없기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2년 가까이 같은 마당을 쓰면서도 그들이 소리 내어 웃거나 떠들어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린 마음에 호기심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가끔 눈이라도 서로 마주치면 왠지 모를 두려움에 몸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이웃에 사는 사촌 형은 준호 아빠를 만날 때마다 거의 허리가 반이나 접힐 정도로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여전히 준호 아빠의 표정은 무덤덤했으나,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사촌 형은 그의 눈에 조금이라도 들어 보이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었다. 약간의 건달끼가 있던 사촌 형은 준호 아빠가 돌보던 동생 몇몇과는 이미 서로 말을 트는 사이처럼 보였고, 어떨 때는 밤이 늦을 때까지도 문간방에서 함께 어울려 놀다 갈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궁금한 나머지 사촌 형에게 사정하다시피 해서 물어보았다. 학교 갈 시간이면 벌써 일 나가고 없는 문간방 동생들이었지만, 날이 어둑해져 집으로 돌아올 때 어깨에 메고 있는 구두통과 기름 냄새 짙게 풍기는 땀냄새로 미루어 그들이 구두 닦기란 것은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굣길에 주차장 사이로 난 지름길을 택해 집으로 돌아 때는 대합실 한쪽 귀퉁이에 나란히 앉아서 구두를 닦고 있거나, 몇 켤레나 되는 구두를 양손 손가락 사이사이로 끼어들고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그들과 눈이 서로 마주칠 때도 있었으나, 얼른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 못 본 척하곤 했었다.


사촌 형에게서 들은 이들의 이야기는 평소의 호기심을 넘어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준호 아빠는 전쟁고아로,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생활을 하다가 권투를 배웠다고 한다. 고아원을 뛰쳐나온 후 형들과 넝마주이를 하면서도 권투를 계속해서 체육관을 대표해 도 대표 선발전에 나선 적도 있었으나, 타고난 완력으로 지난 시절 잠시 건달 생활을 한 일에 그만 발목이 잡혀 권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후, 자신이 자랐던 대구 근교의 고아원 동생들 몇몇을 데리고 독립해서는 이곳 주차장에서 구두닦기로 터를 잡은 것이다.


동생들이 살고 있는 문간 방은 이들이 일을 나가고 나면 늘 문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준호 엄마마저 애 둘을 데리고 삯바느질하러 가고 없으면, 이들이 평소 만화방에서 빌려다 보는 만화가 보고 싶어 몰래 문간방으로 숨어들곤 했다. 담과 붙어 있는 벽 쪽으로 작은 창이 덧문으로 나 있었는데 어린아이 몸 하나 정도는 욱여넣을 수 있는 크기였고, 엎드린 사촌의 등을 딛고 올라가서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면 창문 안, 이불을 개어 둔 위쪽으로 바로 발이 닿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물쇠를 채우지 않는 날이 잦아지더니, 날이 무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예 문을 반쯤 열어두고 일을 하러 간 적도 더러 있었다. 사촌 형이 이들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제방 드나들 듯 맘대로 드나들며, 서로 호형호제하던 때가 아마 그 무렵이었을 성싶다. 서로 눈이 우연히 마주칠  빙긋이 웃어주는 문간방 동생이 있는가 하면, 일을 마치고 와서 슬쩍 껌이나 초콜릿을 손에다 쥐어주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 후로, 저녁을 먹고 나서 어린 준호를 데리고 함께 마을을 돌아다닐 때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여전히 말은 없는 편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귀에 익숙해진 그들의 이름에다 형이란 말을 부쳐 부르는 것이 서로 어색하지 않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 6월이 가까워지던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평소 낚시를 좋아하던 준호 아버지가 오토바이의 뒷좌석에다 준호를 우고 가까운 저수지로 낚시를 갔었나 보다. 또래의 사촌들과 어울려 동네 공터에서 해 질 무렵까지 놀다가 막 대문으로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집안에서 갑자기 여자의 울부짖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마를 비롯해서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문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수돗가에 퍼질러 앉아 실성한 듯 울고 있는 준호 엄마의 양팔을 부축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고, 그 뒤로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는 준호의 삼촌들이 보였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팔달교 근처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난 것이란다. 직진하던 오토바이가 우회전하려던 트럭과 충돌한 것인데, 뒷좌석에서 아빠의 허리춤을 단단히 잡고 있던 준호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튕겨져 나가 트럭과 부딪혔다가 머리부터 먼저 도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 자리서 숨졌다고 했다. 준호 아빠는 바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큰 사고였음에도 다리만 골절되는 정도의 부상을 입었지만 사고가 난 당시에는 자식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힘들게 이룬 가정이었을 거다. 참한 아내를 만나고 나서, 피를 함께 나누진 않았지만 동생들 몇몇을 아래로 거두고, 가족이란 한 울타리 안에서 정말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아니던가. 일주일 가까이 입원했다가 퇴원한 이후 준호 아버지는 한 달 가까이 술을 입에다 달고 살았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므로, 밤마다 미친 듯이 준호 이름을 부르며 벽을 두드리던 준호 아빠의 울부짖음이 여전히 귀에 들릴 듯 쟁쟁하기만 하다.


준호 삼촌들의 말문이 한꺼번에 막혀버리고, 다시 문간방엔 자물쇠가 채워졌다. 어린 마음에도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미안스러움과 함께 덧문 사이로 몰래 숨어들고 싶은 마음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랬듯이, 무릎 꿇은 채로 준호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을 듣는 일에는 변함이 없었고, 옆을 스치듯 지나칠 때 풍기는 기름기 짙은 들의 땀냄새도 여전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처럼 아무런 일도 들에게 없었다는 듯이.


그 후 얼마 안 있어 준호네는 이사를 갔고, 문간방은 한 동안은 주인 없이 비어진 채로 있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죄의식과 함께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비의 비통한 심정을 그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마는, 이사를 가고 나서도  한동안은 준호네가 심적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당시 젖먹이였던 여동생 아래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자애를 마침내 갖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엄마 생각이 난다.


문간방의 주인은 그 후로도 여러 번 바뀌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골목길에 살던 다른 사람들도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졌다. 원래 나지막했던 담벼락은 집집마다 더 낮아져서 마당이 훤히 내려다 보였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선 길고양이마저 사나워져 눈을 마주쳐도 오히려 꼬리를 곤두세우곤 했다. 하기는, 이제 비어있는 이 집의 주인이 바로 네놈이 맞기는 한 것이다.


희미한 가로등을 밝히던 전봇대가 마저 뽑힌 것은 바로 사오 년 전의 일이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 서로 얽혀 있던 동네에 둘러가며 펜스를 치고나서부터는 오로지 공사 차량만 출입을 한다. 골목길은 어두운 밤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를 안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굴레를 씌운 채 힘겨워하던 사람들이 살았던 골목길이다. 이제 그 위로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은 볕이 잘 드는 공간을 찾아 웃돈을 주고서라도 먼저 차지하려 할 것이다.


우리가 이사를 나온 후 마지막으로 문간방에 남은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다른 여자 품에서 난 자식을 어려서부터 손수 거두어 성년에 이를 때까지 함께 살아온 할머니이다. 말하자면, 그 자식이 가정을 이룬 후에 거의 버림받다시피 해서 독거노인이 되고 만 것인데, 결국은 그 할머니가 우리가 살던 집과 마지막까지 운명을 함께하고 말았다. 평생을 음지에서 그늘같이 살아온 분인데, 그 죽음마저 한량없이 쓸쓸했던 것이다.


삶은 굴곡의 연속이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이 잇따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고빗길과 같은 시련으로 연속되기도 한다. 도시의 변두리에서 유년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쉬움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보다는 그리움의 기억이 더 오래 남고, 지난날의 만족보다는 지금의 아쉬움이 나날이 커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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