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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10. 2022

면도(面刀)를 하다가

요즘 얼굴에 난 수염은 삼사 일씩 미뤄두었다가 깎는다. 그만큼 게을러졌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시간적인 여유가 넘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내친김에 수염이 자라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얼굴 수염이 덥수룩해지도록 길러 본 적이 없으니 그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그 삼사 일의 문턱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리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얼굴 내밀어야 할 자리가 생기고, 오랜 세월 아이들을 가르치며 스스로에게 덧씌운 교사로서의 이미지 때문에 하는 수없이 면도기를 들기다. 그리고 어떨 땐 수염이 제법 덥수룩자라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어 보면 수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 좋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 것처럼, 수염이 좀 길어졌싶으면 그때부터는 얼굴 곳곳이 갑자기 지글지글해져 얼굴에 칼을 대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은, 거의 칩거하다시피 집에서만 지내다가 사나흘 만에 문밖을 나서보려는데, 그새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이 못내 거슬렸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생각난 김에 그냥 깔끔하게 밀어버리기로 했다. 사실, 달포 전에는 구레나룻과 콧수염, 그 아래로 이어지는 턱수염의 경계서로 분명치 않을 정도로 길게 기른 적이 있었는데,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낯설어 보였다. 그런데 아무렇게 자란 수염 때문인지, 얼굴에 자글자글했던 잔주름과 기미가 가려지자 오십 대 중반 무렵의  얼굴이 얼핏 보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세월을 애써 거스르려 하지 않고 제 나이에 제때제때 순응하편안스러운 마음 얼굴 곳곳에서 묻어난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하여간 이런저런 망설임 끝에 면도기를 손에 든 것인데, 얼굴에 비누를 칠하고 나서 먼저 길게 자란 구레나룻부터 아래로 쓱 쓸어내리자 서걱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수염 아래의 피부가 칼에 쏠리면서 따끔따끔한 통증이 밀려왔다. 마치 뜻밖의 장소에 난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당겨 뽑을 때의 날카로운 통증이랄까, 그러려니 하고 참고 넘기기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아픔이었다.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오륙 학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외삼촌댁으로 갔다. 이른 아침부터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니는 시골 수탉의 울음소리에 진작부터 깨어 있던 나는, 대청마루에 누워 큰 외삼촌이 면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호기심 어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수수깡 자루인 듯 보이는 대롱의 틈새에다, 뚝 잘라서 반으로 가른 도루코 한쪽 날을 깊숙이 끼워 예리한 칼날만 새초롬이 돋아나도록 만든 면도칼이었다. 세면대 바닥의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요리조리 돌리면서 서슴없이 칼질하는 외삼촌의 손놀림을 따라, 덥수룩이 자란 수염이 까칠한 질감만큼 억센 소리를 내며 서걱서걱 잘도 잘리고 있었다. 한 번의 면도질마다 매끈하게 드러나는 수염의 흔적을 좇으면서도, 외삼촌의 얼굴 위 면도칼이 지나간 자리에서 이내 붉은 핏물이 돋아 뚝뚝 방울져 흘러내리진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아마 지금의 내 나이보다 열댓 살은 더 어렸을 텐데도, 외삼촌은 농사일로 검게 탄 얼굴이었다. 그날, 외삼촌이 면도하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면서 마음 깊숙이 봉인해 두었던 어린 날의 조바심이, 조심조심 칼질하는 내 얼굴 위에서 신랄한 통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발사가 면도를 하기 전에 창틀에 걸어 둔 가죽에다 면도칼을 아래 위로 문질러서 날을 세울 때,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덮은 채 의자에 누워 삿된 소리만을 듣고도 등골 오싹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오랜만에 온몸이 저릿해졌다.


칼질을 마치고 난 후 거울 앞에 서니 우선은 면도한 얼굴이 전보다 하얘지광택마저 나는 것 같다. 추레해 보이던 인상은 어느덧 사라지고, 예전 출근하기 전 면도 후 세면을 하고 꼼꼼히 로션을 바른 후에 곁눈질로 거울을 보는 듯 마는 듯 스윽 지나치며 마주했던 자신만만한 얼굴이 그곳에 있다. 


마무리로, 면도한 얼굴에다 마스크 팩을 붙이고 나서 모니터 앞에 앉는다. 아침 산책은 이미 물 건너갔지만, 이만한 호사스러움에도 은근히 마음은 행복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얼굴을 스스로 케어하면서 혼자 만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어쩔 줄 모를 만큼 즐거워한 적이 어디 반나절인들 있었겠는가!


아찔한 통증 속에서도 자아도취즐거움을 맛 본, 그래서 맞이 한 새날 아침 한나절은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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