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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Nov 15. 2019

칠월, 베이징

나는 작은 것을 좋아하는구나

2014년, 칠월 베이징 / 라사르디나


얼마 전에 친구와 작은 여행을 했다. 친구가 말했다. '너의 지인이라면 너를 모를 수가 없어. 네 취향은 너무나 확고하고, 너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걸 주저하지 않거든'. 나의 몇 가지 확실한 취향 중 하나는 '작고 가벼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 코에 걸면 코걸이겠지만 나는 확실히 삶에 있어서도 가벼운 것, 효율적인 것을 가장 일 번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2014년에 불시착한 베이징은 작고 가벼운 것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들은 큰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공간이 애초에 많아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대부분 크다. 역도 크고, 지하철 통로도 넓고, 천안문도 크고, 맥도날드도 크다. 내가 갔던 칠월은 어마어마하게 더웠기 때문에 이 큰 곳이 시원하고 긍정적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오래 걸어야 하고, 사람도 많기 때문에 나는 종종 지쳤다.


2014, 칠월  / 후지필름 XQ


그리고 시시때때로 하는 짐 검사가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던지. 내게 베이징은 잘 맞지 않는 도시였다. 생각해보면 뉴욕도, 도쿄도, 크고 좋은 도시들은 내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도시 안에는 특별히 작고 가벼운 요소들이 종종 있겠지만. 


베이징에서 그런 요소를 찾자면 단연 난뤄구상이다. 베이징에 한 달씩 세 번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있었지만 놀랍게도 자금성뿐만 아니라 만리장성도 보지 않았다. 사실 자금성 코앞까지 가긴 갔는데, 긴 짐 검사와 천안문부터 자금성까지 걸어보니 '이 곳은 아니구나' 깨닫고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난뤄구상은 무려 3번을 갔으니 얼마나 내가 좋아한 공간인지 알 만하다. 삶의 흔적들이 녹아있는 데다가 역사적이고, 작아서 금세 낯익고 친숙한 공간이 되니 아니 좋아할 수 있을까. 


2014, 오월  / 후지필름 XQ


지금 생각해보면 베이징의 음식도 무거웠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제법 잘 먹겠더니 고작 일주일 만에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그리고 하루 한 끼 식사로도 충분히 배가 불렀던 것이다. 두 번째 출장부터는 늘 가볍던 캐리어가 무거워졌다. 나를 살찌우고, 밤이면 무거워진 위를 달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태어나 처음 현지 음식에 실패하고 점심이면 호텔방에 들어가 햇반을 데워먹었다. 그마저도 많이는 가져가지 못해 라면 반개와 햇반 1/4을 데워 먹었을 뿐이다.


내게는 너무 크고 무거웠던 베이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뜨겁던 베이징도 좋았던 것들도 있었다. 얼음 통 안에 가득 든 싸고 큰 맥주들과 호텔방에 모여 앉아 빔으로 보던 공포영화(자막이 엉망이었다), GPS의 도움 없이 어렵게 찾은 예쁜 카페 같은 것들. 이제는 무거운 짐도 들어보려 하고, 익숙한 것들만 좋아하는 나를 조금씩 바꿔보자 마음먹었는데 막상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베이징이 좀 싫은 걸 보면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싶다. 그래, 엄마가 말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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