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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Nov 15. 2019

팔월, 푸켓

가족과 함께라서 좋았던

오늘 출근을 하려는데 엄마가 식탁에 앉아계셨다. 가만히 보면 분위기 있는 표정인데, 엄마에게 자꾸 묻게 된다. '엄마 기분이 안 좋아?'. 사람이 어떻게 매번 웃으랴. 

그런데 문득 가족여행을 한 어느 해 팔월, 엄마는 이렇게 환하게 웃었구나 싶다. 브이자를 하고, 수영장 한가운데 엄마는 이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우리를 좋은 곳에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해외는 아니었지만 미술관, 영화관, 박물관 새로운 공간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장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도 많았다. 이제 어린 남매는 어른이 되었고, 홀로 남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2014, 팔월 푸켓 / RICOH GR


가족 여행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을 뿐, 엄마에게 이 리조트를 보여주었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오랜 출장에서 무심하게 보낸 카톡이었는데, 장문의 카톡으로 돌아왔다. 요지는 이렇게 좋은 숙소에 엄마가 묵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 카톡을 보고 이 리조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여행은 다다익선이라 대부분 가성비 숙소를 찾는 탓에 이렇게 좋은 리조트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돈 쓰는 김에 엄마가 눈치 보지 않았으면 해서 프라이빗한 풀이 있고, 미니바가 무료인 곳으로 골랐다. 도착하는 날에 호텔 리무진도 불렀다. 문득 어느 순간, 나는 이유 없이 엄마가 애틋하다.


2014, 팔월 푸켓 / RICOH GR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나란히 앉은 모자를 본다. 꼭 닮은 우리를 멀리서 보면 누가 봐도 가족이겠지. 물을 무서워하는 엄마를 처음 봤다. 어제는 그렇게 수영장에서 재미있게 노시더니, 아마도 발이 닿지 않는 공포심이 있으신가 보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다운로드한 예능을 보는 동생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같은 집에 산다고 해서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없다. 시간을 잘 따져보니 우리는 하루에 3시간도 함께하지 않는다.


이후에 다낭과 체코를 함께 했지만 우리의 첫 여행만큼 좋을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밥을 먹다가도 푸켓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서로의 해외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음식 얘기가 나오면 꼭 푸켓 얘기를 한다. 정말 나쁜 일이 하나도 없는 여행이었다. 


2014, 팔월 푸껫 / RICOH GR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가족에 뭉클하고 애틋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가면 우리는 특별히 떠들 일이 없다. 회사에서 긍정왕, 리액션 왕으로 통하지만 나는 집에서도 그런 사람일까. 그저 오늘도 잠시 노력했을 뿐이다. 그래도 우리 모두 한 마디 나눌 일 없이 각자 하고픈 일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공간에 있다. 거실에 깔린 러그 위에 그 녀석은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나는 소파에 앉아 야구를 본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있는데 가끔 우리를 보는 것 같다. 


그래, 그 풍경이 사실은 가족이 함께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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