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관형사·명사] 자기의 이익보다는 다른 이의 이익을 더 꾀하는.
미국 여행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먼 도시를 가야 한다면 유럽도 가보지 않은 나라가 많았고, 메트로폴리탄에 대한 동경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가게 된 뉴저지, 그리고 1시간이면 갈 수 있던 뉴욕은 내게 퍽 인상적인 풍경으로 남아있다. 메트로폴리탄에서 느낀 이타심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숙소는 하숙집이었는데, 전 출장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교포셨다. 잘 꾸며진 방과 맛있는 저녁이 매력적이었지만 다소 무서운 구석이 있어 한 달 내내 눈치를 본건 안 비밀. 그런데 또 가끔은 이렇게 특별한 배려를 해주신 덕에 뉴욕에서의 삶이 풍요로웠던 것 같다. 내내 미국식 점심을 즐길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한식 덕분이었다.
함께한 이에게 어디를 제일 가고 싶냐 물으니 나이아가라 폭포란다. 멀기도 멀고, 일하러 왔지 놀러 왔어? 꼰대 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생각보다 서로를 위했고, 마음이 맞아 진도가 확실히 나간 탓에 우리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했다.
새벽 다섯 시에 출발했던가. 가는 길에 비도 많이 내렸다. 운전만 하루에 14-15시간. 나이아가라를 구경하기는 캐나다가 좋다며, 좀 더 멀리 간다. 비즈니스 관계이기 때문에 이유 있는 친절함이라지만 이건 이타심이 분명하다. 심지어 본인이 누군가가 올 때면 여길 온다며 차에서 한숨 잔다는 게 아닌가. 특별한 하루뿐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우리를 위해 본인의 시간을 썼다.
밥을 한 끼 먹으려 해도 걸어서 갈 수 없는 도로 한가운데 사무실이 있었다. 물론 차가 없이는 사무실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한 몸처럼 움직였다. 이타심이 많은 그분이 차를 몰고 우리의 하숙집들을 돌아한 명 한 명을 태우고 사무실에 도착해, 모두 같은 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고, 식사를 주문할 때면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해주신다.
지금 그냥 생각해도 행운이었다 싶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때의 나는 이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을 다독이고 열심히 했지만 순수한 친절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책임자로 간 첫 출장이었고, 잘하고 싶었고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다. 그러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팀이고, 서로 좋은 마음일 때 효율이 오른 다는 점. 사실 이타심과는 거리가 먼 우리였는데, 어느 날 같은 목표를 위해 서로를 돕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미션이라고 생각했던 '연장'없는 출장을 완료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끝나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우리가 잘 마무리한 데모는 프로젝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날의 팀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