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OO - 번역가의 블로그

by 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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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내가 번역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번역가분들의 블로그가 그리 잘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블로그를 하는 번역가분들이 늘어나, 지금은 다른 번역가 분들의 블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내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무래도 번역가라는 것이 혼자 일하는 직업이다보니 동료라고 할만한 존재를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서나마 아, 이분도 번역을 하고 있구나, 반갑다. 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른 번역가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한 건 나뿐일까? 사실 나는 심심할 때가 많은 사람이다. 일을 해도 심심함을 느끼고 일을 하지 않는 빈 시간에도 심심함을 느낀다. 그래서 괜히 주변을 갸웃갸웃 거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나~'하고 호기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다른 번역가들의 블로그를 종종 살펴보기도 하고, 내 블로그에 괜한 글을 쓰기도 하고 그런다. 다른 번역가분들의 블로그를 바라볼 때면, 일상글은 재밌게 읽는데 관련 글은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읽기도 한다. 내가 일이 없을 땐 질투도 하고, 뭔가 힘내는 글이면 응원하기도 하고, 어쩐지 나랑 비슷한 경험이 쓰여있으면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내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나혼자 북치고 장구치고를 참 잘한다.

나 또한 블로그를 꽤 오랫동안 운영해온 번역가인데, 내 경우는 정말 심심하거나 바쁠 때 글을 쓰곤 한다. 심심할 때는 심심하니까 할 일이 없어서 글을 쓰고, 바쁠 때는 괜히 딴짓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다. 현실 도피의 일종이다. 일상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록하는 글을 많이 쓰는데, 쓰다보면 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와 일에 대한 내용도 기록한다. 물론 비밀유지계약이 걸린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쓰지 않고 정말 뭉뚱그려서 어떠어떠하다는 식으로만 쓴다. 쓰면서 '나중에 보면 내가 이때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있겠지?'하고 생각하곤 하는데, 내가 블로그의 과거 게시글을 다시 돌아보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냥 쓰는 순간에 그친다. 하기야, 뭐 내가 과거 어느 시점에 무슨 일을 했다는 걸 미래의 내가 알면 뭐 어쩌겠는가. 그때는 그때의 번역일이 있을 테고, 과거의 나는 과거의 나일 뿐인것을.

블로그를 오래 운영하면서 블로그 덕분에 가능했던 일들도 많았다. 일단 책도 출간했고, 블로그를 통해 인터뷰 제의도 많이 받아 진행했다. 그리고 은근히 내 블로그를 계속 지켜봐주시는 분들도 계시는 거 같은데, 그분들이야말로 내가 블로그를 통해 얻게 된 제일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게 지켜보진 않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를 지켜봐준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여기고 싶다. 아, 그러고보니 누군가가 궁금해 할 거 같은데, 의외로 블로그를 통해 번역 의뢰를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솔직히 책 번역 의뢰를 받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이상하게도 블로그를 통해 연락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블로그의 내용이 신뢰가 안 가나? ㅎㅎㅎ


여튼, 블로그 작성이 습관이 된 나는 앞으로도 블로그를 열심히 꾸려나갈 것 같다. 블로그가 아니면 내멋대로인 잡담을 길게 늘어놓을 곳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자랑 이야기를 할 곳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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