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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나이 Oct 17. 2020

이건 코로나 우울증인가? 산후우울증인가?

브런치로 우울증 극복하기



 표현이 조금 느린 첫째 아들과 연말에 태어난 억울한(?) 2살 둘째 아들과 24시간 주 7일 함께 하는 나의 육아휴직은 코로나 사태로 시작해 아직도 마스크, 손소독제와 공생하는 일상이 10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잠든 밤만 되면 ‘내가 엄마가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자책과 함께 눈물이 나고 마음이 힘이 들어지는 건 육아 우울증인가 코로나 우울증인가.



나는 왜 우울 한가?


 사람들이 우울 해진다는 건 보통 내 생각과 현실의 괴리가 느껴질 때이다. 마음먹은 일이 예상한 데로 흘러가지 않고 나의 결심과 계획을 무너 뜨려 갈 때 자연의 섭리와 순리를 이겨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둘째의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10개월째 나는 왜 지금 우울 한가?


1. 사랑하는 아이들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간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원래 사람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대가 없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건 엄청난 욕심이다. 휴직을 하고 아이들과 지내면서 먹는 것부터 입는 것 씻는 것 자는 거 까지 내 손을 거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 대한 소유욕(?)이 생겼는지 아이들에게 ‘내가 원하는 데로’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한 보상심리는 아닐까. 밥을 먹을 때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비 맞고 싶다고 우산을 던지고 뛰어가지 않았으면 좋겠고, 답답해도 마스크를 잘 써주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다운 행동을 할 뿐이다. 엄마보다 수저를 덜 써봤으니 흘리수밖에 없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신기할 뿐이고, 숨쉬기가 힘들어서 마스크를 벗어던질 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항상 되새기는 말이 ‘엄마의 귀찮음이 아이 훈육의 이유가 될 수 없다’인데 어느새 그걸 잊어 먹었나 보다.


2.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다.

아들 둘과 하루 종일 보냄 ->체력이 고갈되어 감-> 정신이 피폐해짐 -> 아이들을 혼냄 -> 죄책감을 느껴 힘듦  : 육아의 악순환 고리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맞은 제일 큰 타격은 휴원과 다름없는 유치원의 등원 축소이다. 휴직을 시작하며 큰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고작 하루 4시간..) 둘째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고, 오후에는 큰 아이에게 조금 더 신경을 쓰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터지고 두 달간 입학이 연기되었고, 겨우 입학을 한 뒤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전체 인원이 3분의 1만 등원할 수 있게 뜸하여 아이는 주에 한번 유치원을 가게 되었다. 그 시간을 나머지 시간 전부를 아이 둘과 내가 공생하는 시간이다. 늘 일하는 엄마였기에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어 아이에게 많은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출산 후 바닥난 체력은 아이들을 따라가기가 힘들고 동시에 엄마를 찾아 대는 아이들을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정신이 피폐해진다. 아이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해진다는 위대한 ‘키즈카페’를 가고 싶지만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게 해주고 싶어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며 그마저도 불안하다. 제대로 외식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늘 삼시 세끼를 차려 먹어야 한다. 한마디로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다’. 어쩌다 멀리 사는 동생이 집에 오게 되면 둘째 이유식을 먹이는 동안 첫째의 그네를 밀어 줄 사람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도움이다.

얼마 전 초대받은 집에서 에어바운서로 키즈카페를 만들어 주었다. 이 곳을 ‘육아 천국’이라 부르기로 했다.



3.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해야 할 일은 더 많다.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는데 왜 나는 힘든가?

 어릴 적부터 세상에 재밌는 일이 너무 많고, 해보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예를 들면, 브런치에 글을 쓴다던지, 어플을 만든다던지(만들고 싶은 어플이 있다), 이모티콘을 그런다던지. 하지만 지금은 그 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사소하게는 좋아하는 책을 방해 없이 읽는 일이나 제대로 된 한 상 요리를 차려 먹는 것조차도 사치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하루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으로 시작해 큰 아이와 함께 해줄 발달놀이 계획을 짠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씻기고 첫 째의 아침밥과 둘째의 이유식을 번갈아 준비해 먹이고, 둘째가 오전 낮잠을 자는 동안 큰아이와 몸놀이(라고 말하지만 레슬링인 것 같은)와 계획한 발달 놀이(소근육 놀이/감각 놀이 등등)를 하다가 둘째 아이가 깨면 우유를 먹이고 첫째 아이의 언어치료센터를 간다. 코로나 덕분에(?) 외출 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스크를 챙겨 다녀야 하며 수시로 체온을 재고 손 소독을 해주어야 한다. 집에 돌아오면 널브러진 장난감들과 아이들이 갈아입은 옷을 대강 정리하고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이마저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된 순간 포기했다.) 저녁을 해서 먹고, 씻기고, 재우면 하루고 끝난 것 같지만 청소를 하고, 젖병 설거지를 하고 나야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럼 나는 ‘이제 내 시간이다!!’를 외치며 글을 쓰려다 잠이 들어버린다. 이건 나의 의지 문제 인가. 체력의 문제인가.

우리집만 이렇게 엉망진창 인가요?.. 밥 차리는 동안 TV타임.

4. 나만 뒤처진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난 아이 엄마는 둘째까지 낳아 키우는 5년간 일을 중단한 뒤 조급함을 느낀다고 한다. 1년 2년.. 경력단절이 길어질 수록 다시 일을 시작할 확률이 낮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적을 둔 곳이 있어 마땅히 돌아갈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급함이 느껴진다. 비즈니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업계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미국/유럽에 있는 엔지니어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10개월째 멈춰있는 뇌의 외국어 영역이 제대로 활성화될지 휴직과 동시에 전원이 나가버린 랩탑 속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든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가 되었을까. 며칠 전 회사에서 받은 전화는 나의 빠른 복직을 기다린다는 소식과 복직 후 나의 업무능력을 기대한다는 긍정적인 소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담감이 커졌다. 지금이라도 잠자는 시간을 줄여 복직을 준비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몇 달 전에 얼마의 시간을 투자해야 할까. 어쩌면 이건 내 마음속의 문제는 아닐까.





나는 무엇으로 우울증을 극복해야 하는가


 우울감이 나를 지배할 때 제일 무서운 건 현실과 감정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사이의 선이 모호해지며 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주어진 현실을 왜곡해서 보게 되고, 천사 같은 아이들에게서 도망가고 싶어 진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다스리는 데 집중을 한다.


1. 생각을 글로 써보기

 지금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뭐든 요점만 찾아 정리하는 걸 선호하는 나는 감정을 다스리는 일조차도 정리와 요약이 필요한가 보다. 그 덕에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은 글들이 ‘작가의 서랍’에 쌓이고 있다. 언젠가는 발행하겠지?


2. 생존 운동

 아들 둘을 둔 엄마에게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법이다. PT를 시작하고 코로나 사태로 헬스장이 문을 닫으며 중단되는 동안 집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유튜브에 유명한 ‘땅끄 부부’ 영상이다. 첫 째가 아빠랑 씻는 동안 둘째가 잠이 들었다면, 바로 운동할 때다. 운동을 시작한 후 아이들과 놀다가 나가떨어지는 횟수가 줄었고, 산후 부기가 빠지면서 자신감도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다.

재우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깨버렸다. 엄마의 아이패드가 탐이 나는 아가ㅜㅜ 운동 10분만 하게 해주라..


3. 이모님은 구세주

 못하는 건 깔끔하게(?) 포기하고 아웃 소싱한다. 요즘은 어플을 통해 청소대행 이모님을 섭외하기가 굉장히 쉬워졌다. 정기예약을 했다가 외출해야 하는 경우 예약을 미루거나 취소하기도 쉽고 마음이 안 맞는 분이 오 실 경우 얼굴 붉히지 않고 교체도 가능하다. 최근 우리 집에 2주에 한번 오시는 이모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나는 이렇게 외친다. ‘구세주가 오셨어요. 살려주세요 ㅜㅜ’’ 우리 집을 보고 흠칫 놀라시긴 하지만 웃으시며 ‘그래도 시간 내에 끝내 볼게~’ 하시고는 정말 신기하게도 시간 내에 청소와 정리를 끝내주신다. ‘이모님 존경합니다’


4.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기

 아이들은 잘 때가 제일 이쁘다(우리 남편의 지론). 그래서 잠든 아이들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는다. 자신 없지만 이 아이들은 나로 인해 행복한 아이가 될 수도 불행할 아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마음을 다 잡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매일매일 다짐해본다.



어쩌면 이건 ‘코로나 발 산후 우울증 :코로나 사태 속에서 출산한 엄마들이 겪는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신드롬은 아닐까?

 나는 지금도 불현듯 엄습하는 우울감에서 확실히 발을 떼지 못했으며 수시로 발목을 잡힌다. 또 한동안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그럼 그냥 잡혀주는 수밖에. 수영을 배울 때처럼 머리를 물에 넣었다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고개를 들었다 반복하듯이 우울했다 다시 괜찮아졌다 수 없이 반복하며 버텨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숨을 쉬는 동안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결승선에 가 있듯이 나도 꾸준히 앞으로 나가고 있지 않을까?


그래도,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내일도 나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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