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리나이 Oct 04. 2021

한국 나이로 세 살이에요

대화에 정해진 답은 없다



선배 : 애기 많이 컸지? 몇 살이지?

니 : 한국 나이로 세 살이에요.

선배 : 몇 개월이야?

나: **개월이요.

옆에 있던 다른 선배 : 그래 그렇게 말해야지 한국 나이가 뭐야? 외국 나이랑 구분해서 말해줘야 돼?

나: …

지인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의 대화가 옆에 있던 나이가 많으신 선배님의 한 마디 간섭으로 종결되었다.

 

아이를 낳게 되면 모임이나 사적인 만남에서 또는 직장에서 종종 아이의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유아기 아이들은 한 해에 태어났더라도 개월 수에 따라 발달이 천차 만별이기 때문에 엄마들 사이에서는 보통 개월 수를 말해 준다. 하지만 결혼을 안 한 사람들은 '그게 어느 정도인 거야?'라고 되물어 보는 경우가 있어 나이로 얘기해준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이 근무하는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아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생기는데, 보통은 ‘한국식 나이’에 대해 흥미로워한다. 그래서 ‘한국 나이’, ‘외국(?) 나이’를 설명해주는 습관이 생겼고, 무심결에 ‘한국 나이’를 얘기하기도 한다.


'한국 나이로 3살이긴 한데 생일이 느려요. **개월이에요.' (체구가 작은 아이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이 처럼 대화 속 한 문장 말하는 사람의 경험과 이유 또는 관념이 녹아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의 문장을 부정하는 건 그 사람의 배경에 대한 부정 하거나 그 문장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경험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아이가 있고, 아이 나이를 말해 본 적이 있지만, ‘한국 나이’를 설명해 본 적은 없어’. 어릴 적 ‘어른이 말씀하시면 ‘네’ 하고 대답해야지, ‘왜요?’가 뭐야?’라는 말을 들어 본 사람들이 많다. ‘네’라는 대답이 더 공손해 보이기 때문일까. 그 시절에는 ‘네’라는 대답을 강요받았다. ‘왜요?’라는 대답이 건방져 보인다나…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그 어디에도 대화에서 정해진 대답 방식이나 질문 방식은 없다. 관습적으로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내세요?’ 같은 대화의 맥락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마저도 다른 형태로 대답을 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대답해야지'라는 건 자신의 경험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기 위함으로 느껴진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정답이고, 타인의 삶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자만감은 상대방의 경험을 자신의 논리로 해석해 버리기도 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언어 폭발기의 아이가 ‘형아 어디를 가느냐~’, ‘치타 뱅 틀어주시오.’ 같은 재밌는 말투를 쓰는데, 엄마인 나는 ‘산토끼’ 노래에 나오는 ‘어디를 가느냐~’라는 가사에서 배운 말이나, 핑크퐁 동물 동요에 나오는 ‘치타 치타 뱅뱅~’을 따라 한다는 걸 안다. 귀엽긴 하지만 아이의 문법을 교정해줘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다 이전 선배와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났다. 아마 경험으로 배우는 아이는 다른 말들을 배우면서 자신의 표현법을 찾아갈 것 같다. 또 혹시 나도 후배들에게 ‘대답’에 대한 틀을 가르치고(간섭하고) 있진 않은가 돌아보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그런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