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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나이 Dec 17. 2021

열 번째 계단을 건너뛰다

열한 계단_채사장


각자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재미로.. 힘든 일이 있어서.. 올해의 목표라서.. 누가 추천을 해줘서.. 나의 독서는 재미에서 위로로 옮겨 간 듯하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현실에서 방황하다 책에서 이유를 찾곤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만큼 힘들었던 사람들이 있고 책에는 언제나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한 계단의 저자 '채사장'은 나와는 반대로 책을 시작한 사람이다. 책에서 사색과 고뇌를 시작하였다. '죄와 벌'을 통해 인간은 어떤 이유로 선택을 하는 것인지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하고 종교를 통해 답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철학과 역사, 과학을 통해 인간이 가진 진리와 그 이면의 세계를 배웠다. 극한의 상황에서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소임을 더 중시하여 실천하는 이상적인 존재에 대해 고찰하고 현실과 타협해 경제활동에 집중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 발생한 교통사고는 그에게 뒤 돌아보며 사소한 모든 것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와 죽음의 대한 태도 해 대해 고민하게 해 준다.


 재독을 시작하고 서재 책꽂이를 살펴보던 나는 책갈피가 꽂힌 책을 우선해 다시 읽기 시작했고, '열한 계단'은 그중 한 권이다. 그 책갈피는 다섯 번째 계단을 지난 어느 페이지에 꽂혀있었고, 그건 과학과 우주였다. 몇 년 전 우연히 중고 서점에서 사서 그 자리에서 푹 빠져 읽다가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책꽂이에 꽂아 둔 듯하다. 그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를 읽어 넘기며 내가 그 당시의 나보다 한 걸음 더 성장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는 이 책의 완독이 한 주의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열 번째 계단을 건너뛰고 말았다. 생소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죽음을 논하다 보면 삶의 허무함을 동시에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허무함을 느낄 때가 아니다. 


저자는 나와 반대로 이상을 통해 현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내가 현실로부터 내면의 사색으로 옮겨 갔기 때문에 이 책을 조금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현실이 치열한 나는 내면의 사색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남아돌아 현실과 동 떨어진 생각을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느 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고뇌는 현실과 타협하는 시간만큼 필요하게 그 사실이 나를 현실에서 더 단단하게 만든 다는 것을.


내면의 성숙은 고결한 방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선입견,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어려운 철학책과 씨름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사색하는 아름다운 방법만이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옳은 말이다. 우리는 실제로 그러한 시간 속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얻어지지 못하는 절반의 배움이 있다.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의 초라함에 몸부림칠 때에만 얻게 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도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니체와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을 읽으려고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소설, 자연과학, 인문과학을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철학과 사회 이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이 책이 불편했고 더 많은 집중력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중심으로 나에게 근접해 있는 영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넓은 영역을 보는 눈이 생긴 기분이다. 재독이 끝나고 나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책들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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