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으면 멋진 인생일 줄 알았다
오래 산 인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짧게 산 인생도 아니다.
정말 어정쩡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40대 중반.
마흔이 되면 다 이루고 누리고 살 줄 알았다.
힘든 것은 그 어느 것도 없을 줄 알았다.
솔직히 힘들어도 잘 견디며 하루하루 앞으로만 나아가는 인생을 살 거라 생각했다.
정말 오만 중의 최고의 오만이었다.
내가 생각한 40대에서 맞은 건 결혼을 했다는 것과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어느 것도 예상대로 된 것이 없다.
돈 걱정 없이 1년에 몇 번씩 여행을 다닐 줄 알았고,
부모님께 용돈을 척척 드리며 하고 싶은 일 하시면서 살라고 예쁜 말을 하며 살 줄 알았고,
아이가 학교 간 사이에 엄마들과 우아하게 브런치를 먹으면서 아이의 학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다.
또, 백화점에 누워 있는 옷들이 아닌 마네킹들이 입고 있는 옷을 사이즈만 말하고 결제를 하고
나오는 신여성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책 한 권은 쓰고 다른 제안도 받아서 후속작을 고민하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작가라는 명함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20대 때 꽃다운 나이를 함께 보낸 친구들과 꽃구경도 다니고, 밥을 먹고 나오면서 1/N이 아닌 서로가 계산을 한다면서 서로의 카드를 들이밀어면서 가게 사장님을 당황시키는 일들이 비일비재할 줄 알았다.
이 모든 것들은 내 어릴 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것이고 현실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인데 결정적으로 돈이 없다.
돈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은행에 매달 꼬박꼬박 대출금을 갚아가면서도 대출금은 줄지 않는 상황이다.
1년에 한 번도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기 빠듯하고,
부모님께 용돈을커녕 빈손으로 가서 아이스박스 몇 개씩 반찬을 채워오고 원재료값도 드리지 못한 채
감사하다는 말만 몇 번하고 온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에 아이 친구 엄마들과 먹는 브런치는 감정 소모가 너무 크다는 걸 안 뒤로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된 지 오래됐다.
또, 백화점에서 옷을 사기는커녕 옷에 관심도 없다. 인터넷에서 번쩍거리는 걸 보고 있으면 눈도 아프고,
오프라인 매장은 주목받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아서 패스하는 경우가 많으니 늘 입던 옷만 입는다. 이런 성격을 알아서 주변에서 새 옷도 주고, 입던 옷도 주신다. 맞으면 그냥 입으니 옷을 살 일이 없다.
글쓰기를 좋아했으니 내 이름으로 된 책은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좋아하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잘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얻을 수 있다는 없다는 건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나의 20대를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연락이 안 되고, 연락이 되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에서 얼굴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마흔이 넘으면 어른이 되고, 멋진 어른으로 멋진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그냥 한 인간으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죽을 만큼 괴롭기만 한건 아니다.
아이친구 엄마와는 감정소모가 싫어서 브런치를 먹지 않지만,
꼭 가고 싶은 브런치가게가 있다고 하면 연차를 내고 함께 가주는 남편이 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카더라 통신을 이용하지 않고, 내가 직접 공부하고, 책도 보고 강연도 찾아간다. 그런 정보를 아이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필요할 때만 팁을 주는 것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행히도 아직은 아이의 성적이 좋아 주변에서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있는 대로 말해주면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너무 원론적으로 말하고, 그걸 아이가 해내고 있다는 걸 믿지 않는 눈치이다.
그러나 실제로 엄마표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원론적인 방법으로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이다.
믿던 믿지 않던 우리 아이는 하고 있는 방법을 숨기지 않고 말해주고는 있다.
이걸로 충분하다.
내 모든 삶이 상상한 대로 살고 있지는 않지만 남편과 아이와는 내가 상상한 대로 살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