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여행_18
산티아고 걷기가 총 7일 중에서 반환점을 돌고 이제는 5일 차로 접어들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여행도 15박 16일 중에 8일 차가 지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주제는 "내 안의 새로운 나를 발견하자"자였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약 20km를 걸으면서 나에게는 어떤 새로운 '나'가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지성과 황정음 주연의 "킬미, 힐미"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지성의 인물 속에 여러 가지 자아가 내재되어 있어 생활 속에서 그 속의 자아가 나와와 주위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내 속에도 나를 통제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다중인격자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해보니 드라마에서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제 속에는
남들에게 인식되는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주일날을 잘 지키는 크리스천'
' 모범적인 가장',
' 교육에 열의가 있는 아빠'
' 회사생활을 열심히 있는 직장인'
' 아내에게 충실한 남편'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 "완벽주의자", "많은 욕망을 가진 남자", 등등
저도 상황에 맞게 저의 모습을 조금씩은 다르게 행동하고 거기에 맞게 사는 모습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숨겨진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은 많은 모습들이 있음을 다시 알게 됩니다.
과연 나는 저런 조건에서 얼마나 잘 행동 아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제가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저를 여러 가지로 변신시키며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역할 배역에는 제 자신의 부르심 또는 신이 저에게 주신 참모습대로 얼마나 살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식재료로 사용되는 양파를 까려면 겉의 누런 얇은 껍질을 벗기고 뿌리 부분의 실수염 뿌리를 칼로 도려낸 후 하나씩 양파껍질을 벗겨내야 합니다. 겉의 껍질은 아직 푸르스름 한 부분이 있는데 한 겹씩 벗겨낼 때마다
새하얀 속살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잘 벗겨지지 않고 그것을 벗겨내게 되면 어느새
양파의 알싸한 향내가 내게 되고 우리의 눈물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양파가 평소에는 남들에게 보일 때는 누렇고 약간의 광택이 있는 모습으로 여리디 여린 속을
보호하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듯 보이다가 한 꺼풀 벗어지면 아직도 속을 보호하기 위해 두툼한 겉껍질을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벗겨내면 정말로 여리디 여린 순수한 속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날 것으로 먹을 때도 겉보다는 속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저도 양파와 같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다들 비슷하게 보이려고 외형을 갖추고 있으면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친한 친구들이나 마음을 친하게 되면 겉의 껍질은 스스로 벗겨내고 겉껍질을 보이면서 잘 지냅니다. 그렇지만 속껍질은 그대로 간직한 채 혹은 자신도 모르는 채 안으로 간직하고 삽니다.
내 안에 감추어진 순수하고 오직 나만의 모습은 어떤지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말로 내 안에 감춰진, 나 자신도 모르는, 그러면서 되고 싶은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안에 감추어진 양파 속껍질처럼 여러 가지의 저만의 모습을 찾고 찾아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수반되는 것은 양파가 껍질을 벗어낼 때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처럼 새로운 나,
"새로운 나"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과 몸부림 그리고 영혼과 마음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내면의 모습을 알게 되고 그 모습을 드러내면 많은 사람들과 나 자신 스스로에게도
호감을 주고 좋은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하루도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모습이 날로 새로워지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점점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고후4:16, 쉬운성경)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가운데 나와 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싫은 사람이
있는 것은 다들 경험해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그냥 싫고 가까이하게 되지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은 내 안에 그 두 가지, 즉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좋은 점과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싫어하는 점이 우리 아니 내 안에 똑같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어떤 것을 알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하면 그것이 좋은지 또는 싫은지를 잘 모르고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자석에서 같은 극끼리는 '척력'이라 해서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는 '인력'이라고 해서 서로를 밀어낸다.
우리의 감성이나 마음속에도 이러한 것이 적용되는 것 같다. 자기에게는 없는 점이나 닮고 싶고 그런 점에는 호감이 가고 배우고 싶은 마음에 그런 점을 가진 사람한테 끌리게 되고 자기에게 있으면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거나 자신의 단점, 혹은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점을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면 왠지 싫고 멀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대인관계에서 나쁜 감정 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꺼려지고 불편하고 그런 것은 그 사람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TV CF에서 '내 남자의 향기가 다른 여자에게서 느껴진다'라는 카피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싫어하는 우리의 모습이나 단점을 다른 사람에게서 잘 느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에게 신은 다른 사람을 보고 느끼면서 자신의 잘못된 점을 깨달으라고 그런 감성 장치를 우리 마음과
이성 속에 기본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내장시켜 놓았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통해 우리를
발전시키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싫어하는 것에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큰 통나무는 보지 못하느냐?
(눅6:41, 쉬운 성경)
매일 새로운 나를 찾은 것처럼 영혼의 눈물을 흘리면서 좋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비추어 나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여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해가는 우리가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방향이 아닐까 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터닝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