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여행_16
'간이역'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듣기 힘든 단어이다.
오늘 아침편지 낭독 시간에 들은 '간이역'이라는 단어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모사를 라레스 고개를 넘으면서 가빠진 숨을 고르고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앉아 쉬어가는 언덕의 정상이 오늘 첫 번째 간이역인 셈이다. 고개에서 잠시 서는 것처럼 나의 인생에서 잠시 멈추어 설 간이역은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고개에서 내려갈 약 20km를 생각하고 점퍼나 티셔츠, 등산화 끈을 매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갑니다.
우리는 이번 여행이 우리 인생에서 속도제한 없이 달려오기도 하고, 휴식 없이 달려온 자신, 그리고 생각을 할 것이 많아 생각을 할 시간, '잠깐의 여유', '짬'을 내기 위해 삶의 여정에서 '산티아고'라는 간이역에 내렸습니다. 우리는 산티아고 간이역에 내려 멈춤이란 참맛을 만끽하고 있나요?
간이역은 필요에 따라 정책에 따라설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정해진 큰 역에서만 서고 내리고 타는 데만 익숙했지. 실제로는 간이역 같은 데는 잘 내려보지도 않았고 간이역을 내릴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간이역에서는 그 어떤 것을 할 무엇도 없습니다. 가끔씩 간이역을 생각해 보면 작은 대합실에 개찰구 하나 의자 또는 벤치 하나가 전부입니다.
늘 손님이 붐비지도 않고 사람들의 왕래도 적은 곳 간이역!!!
간이역에는 역무원도 없고 기차가 정차하는 횟수나 시간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간이역은 무엇을 하려고 내리는 곳이 아니고 간이역에서는 어떤 것도 할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곳입니다. 현대인들은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간이역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졸리면 벤치에 앉아 따스한 햇볕에 졸아도 좋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 들고 그 따스함을 두 손으로 감싸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마흔이 넘어선 어느 때부터는 회사, 집, 교회 등에서 벗어나 나 혼자만 느끼고 있고 싶은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런 때를 청소년 시절에 겪는 사춘기처럼 중반을 넘어서는 그때를 '사춘기'라 부르며 대부분 40대 이상의 나이가 들면 이런 시기는 누구나 겪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보통 중년의 남성들이 그 사춘기를 지나면서 돌파구를 찾는다는 것이 비정상적인 간이역을 잘못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술', '도박', '바람(여자)' 그리고 취미활동으로 골프, 낚시, 운동으로 간이역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건전하게 하는 등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하는데 너무 간이역을 자주 가서 간이역을 주정차 역으로 만들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간이역은 주정차 역보다 쉬는 시간도 매우 짧고 그 시간도 매일 같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편의시설도 없습니다. 어떤 곳은 역무원도 없는 곳도 있으니 오직 그 간이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을 다 해결해야 합니다. 편의시설도 없는 간이역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푹 쉬고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Relax 하는 곳으로 정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간이역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나만 아는 장소면 더욱 좋습니다. 마음과 몸이 푹 쉴 수 있고 그곳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고 때로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혼자서 엉엉 소리 내서 울기 편한 장소면 더욱 좋으리라. 나이가 한 살 더 먹어가며 때로는 울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괜히 슬픈 것도 아닌데 그냥 울고 싶을 때 남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눈물로 눈에 먼지도 털어내고 마음에 밭에도 눈물로 적시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거기서는 시간을 정지시키자.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본 만화영화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삐삐'라고 기억하는데 어떤 일이 생기면 주인공이
요요 같은 장난감으로 현실세계를 정지시키고 사차원의 세계로 여주인공 미나를 구하러 갔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간이역에서는 만화의 주인공처럼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천천히
느리게 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매트릭스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매우 빠르게 움직여서 총알이 날아가는 것을 피하는 액션을 보여준 것과 같이 간이역에서는 현실을 매트릭스 주인공처럼 현실을 느리게 하고 제삼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분은 머리가 복잡하고 회사일에 지치면 토요일이나 일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차에 시동을 걸고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차를 운전하여 동해로 향합니다. 새벽에 강원도로 가는 길은 차가 없어 막히지도 않으며 그냥 가서 해 뜨는 것 보고 뜨거운 커피 한잔하고 부둣가나 해안가를 걷고 뜻 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운전하고 온다. 그러면 무거웠던 머리는 정리되고 마음은 가벼워진다고 합니다. 그런 곳이 우리가 살면서 만들 수 있는 간이역의 한 예제가 되지 않을까?
고도원 님이 옹달샘에서 기도하고 명상한다는 기도실을 갖고 거기를 일상의 간이역으로 삼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 생활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갈 수 있는 간이역도 필요하리라. 시간을 들여가는 간이역은 약간 깊은 상처,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정리하는 곳으로 이 생활에서 쉬어 갈 수 있는 간이역은 어디다 만들까?
고민해봐야 합니다. 저는 몇 달 전에 우연히 회사에서 운영하는 명상실에서 1주에 1시간씩 6주를 했는데
바디 스캔, 파워 맵 등을 해보았을 때는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체험하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것이 일상에서 만드는 간이역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새벽에 내 책방에서 때로는 교회 새벽에 기도를 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이역으로 생각하고 오신 분들은 가던 인생길을 멈추시고 충분히 쉬고 계신가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면 뭉친 마음의 근육도 풀어주면서 앞으로의 가야 할 길도 그려보고 계신가요? 저희 6조 최영미 님은 인천공항에서 출발부터 스마트폰을 통화 정지시키시고 호텔에서도 Wifi도 연결하지 않고 조원 전체 카톡도 열어보지 않으시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두 아들의 엄마이고 아내인데도 보름간 홀로 지내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온전히 자신만의 간이역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이런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간이역은 기도 방이나 동해안도 해결해주지 못할 때 찾아가는 간이역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상과 밀접한 곳에 하나, 좀 떨어진 남들이 찾지 않고 자기만 가는 곳에 하나,
그리고 멀리 떨어진 말도 잘 통하지 않은 아침편지 여행 같은 것으로 하나, 전부 3가지 정도의 간이역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먼저 달리는 기차에서 간이역에 내릴 수 있는 용기만 내면 충분합니다.
실제로 기차가 다니는 곳의 간이역을 하나 정도 마련하여 머리가 복잡할 때 그다지 속도가 빠르지 않은 기차를 탁고 방문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바쁜 일상의 기차에서 쉽게 내릴 수 있는 간이역을 몇 개 정도 마련해도 좋을 듯하다. 그곳에는 다른 것은 필요 없다. 간단히 쉴 수 있는 의자와 추울 때 손을 데울 수 있는 커피면 충분하리라. 거기에 음악까지 더하면 금상첨화. 이곳에서 세상 풍파에서 벗어나 쉬면서 더 큰 꿈을 꾸고 더 먼 길을 걸어갑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터닝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