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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Apr 23. 2021

불금 오후를기다리며...

이제는 나를 위해 다르게 살기로 했다_5

인간은 
 마음입니다. 
 문제는 자기 마음이 
 숨 쉬도록 가만히 두는 것이죠. 
 질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샘이 솟아날 것입니다. 
 기도가 이 호흡을 도울 수 
 있습니다. 
 
 - 엠마뉘엘 수녀의《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중에서 –



바람에게 몸을 맡기는 이에게


‘불금’이라는 단어를 난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아. 언제부터?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도 이 단어가 내 삶에 다가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것 같아.  ‘불금’이란 단어는 젊은 20,30대 친구들이 쓰는 단어라고 생각했고 나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 생각했지. 나에게 있어서 금요일은 정말로 아무 일이 없이 지나가기를 바랐고 추가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고 주말을 맞이했으면 하는 일주일 중의 하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어. 그렇게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직장인의 습관이 배어 있었고 그것이 내 몸에, 내 생활에 익숙해져 있더라고.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토요일까지 일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나의 생활이 당신도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왔을 거야. 이런 생활이 벌써 20년 정도가 흘렀으니 금요일은 그냥 금요일이었고 어쩌다 한 번씩은 야근하지 않는 날에 불과했지. 새로 입사한 후배들이 퇴근하면서 ‘좋은 불금’ 보내세요 라고 인사라도 하면 그냥 건성으로 흘려 들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지. 인사를 받기만 하는 것도 뭐해서 답변으로 ‘좋은 불금’이라고 대답해 주는 것이 나의 불금에 대한 태도였어. 오직 일찍 퇴근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어. 맥주 한 캔 정도를 마시거나 가족들과 외식할 수 있는 여유, 오래간만에 TV 앞에 앉아서 못 본 TV 드라마나 예능을 보는 것이 낙이었다고 할 수 있지. 여기에 보고 싶었는데 못 본 영화를 케이블 채널에서 보게 되는 날이라면 최고의 불금이라고 행복해했던 나였던 것 같아.


하지만 어느 때부터 인지 나도 ‘불금’을 즐기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젊은 친구들처럼 불금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 불금이 단지 일찍 퇴근한다는 의미에서 정말로 불금을 불금답게 보내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어. 말 그대로 불타도록 말이야? 어떻게 불태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요일은 다른 요일보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하는 날,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찾아서 생색내면서 먹어보는 날, 혹은 하고 싶었는데 일로 인해 한쪽으로 밀어두었던 일을 하는 날이라고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어. 언제부터 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을 금요일 날 하게 되었어. 아침 일찍 가서 하고 나니 오전에 모든 것이 다 끝나게 되더라고. 그리고 나니 아무런 계획이 없는 금요일 오후가 내 앞에 딱 떨어진 거야. 당신도 경험해 봤는지 모르지만 늘 바쁜 금요일, 일주일의 마감을 하느라 바쁘게 보내다 갑자기 금요일 오전부터 회사 일도 없는 시간이 잠시나마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참 고민이 되더라고.




우선 점심을 먹으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 무엇을 하면 좋을까? 평상시 금요일이라면 저녁 6시나 7시까지면 약 최소 7시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말이야.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평상시 일만 하다 보니 평범한 직장인에게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무엇을 할 줄 모르겠더라고.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영화 한 편을 보러 극장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지. 영화관에 가다 보니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나도 솔직히 몰랐어. 아니 금요일 점심시간이 막 지났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있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닐 줄은 정말로 몰랐어. 나에게는 이상한 경험 중의 하나였어. 영화관에 갔을 때는 금요일 오후라서 자리가 많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더라고. 평일 오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있던 거야. 나만 모르고 있던 현실이던데. 나만 모르고 당연하리라고 생각했던 사실들이 실제로는 틀린 게 많더라고.


보고 싶던 영화를 혼자서 본다는 것, 그것도 평일 오후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지. 지금도 괜찮은 기분은 꽤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아. 그 날의 경험과 기억은 나에게 불금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지. 젊은 후배들이 왜 금요일이면 직장상사와 눈을 마주치기를 싫어하고 금요일 오후에 회의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지를 알게 되더라고. 금요일 오후에는 젊은 친구들이 왜 그리 전화를 오래 하고 문자를 나누는지 이해하는 계기였어. 다른 사람과 ‘불금’을 어떻게 보내려고 시간을 내어 약속을 하는 준비였던 것 같아.


또 한 번의 기억은 금요일에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강남역 주변에서 나갔었지. 금요일 강남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는 일 년에 몇 번 없는 연례행사 중의 하나였지. 회사에서 강남으로 향하는 퇴근버스를 타고 강남 역에 내렸지. 버스에 내리자마자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로 하지 못했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느낀 것은 금요일 저녁은 나와는 상관없이 불타오르고 있더라고. 그들은 나처럼 친구들을 만나는 것인지는 몰라도 강남역 주변의 모든 음식점과 호프집, 카페 등 모든 곳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거기에는 즐거움과 기쁨, 많은 웃음이 넘치더라고. 


이것이 젊은이들이 말하는 불금의 진정한 모습이구나. 내가 그것을 그제야 알겠더라고. 이런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알게 되었지. 나만의 불금 행사를 가져야겠다고 말이야. 금요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좋겠지만 나만의 금요일 오후를 보내는 방법을 나름대로 찾기 시작했어. 




금요일은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을 해. 가급적이면 눈을 뜨자마자 출근을 해서 금요일 날 처리해야 할 일을 다 해 놓는 것은 물론 오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이런 계획은 벌써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행복한 고민일 거야. 일찍 출근해서 8시간 근무를 마치는 시간에 일찍 회사 밖을 나오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 아마도 금요일이 업무 집중도가 가장 높을 수도 있을 거야.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금요일 오전 근무만 하고 회사 밖을 나가는 거지. 그런 날은 회사에서 멀리 떨어지는 곳을 가는 거지. 운전하고 가까운 지역으로 혼자 나가던가, 아니면 보고 싶은 전시회, 또는 듣고 싶었던 유명인의 강의를 들으러 발품을 팔고 다니고 있어. 이런 날에 집에 들어가면 왠지 기분이 뿌듯하고 내가 참 좋은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을 해. 그러다 보면 마음속 한 저편에 행복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지.


불금이라는 행사는 나를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서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어.  매일 반복되는 생활과 개발 납기를 맞추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고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해보는 일상 탈출 기회를 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 그것이 한 편의 영화나 전시회를 보는 것일지라도 나에게는 회사일과 가정 일에서 벗어나 전혀 생각하지 않던 방향으로 나를 몰고 가기 때문에 더 좋은 것 같아. 이런 기회가 나를 좀 더 자유스럽게 놓아준다고 할까? 그동안 접하기 쉽지 않았던 생각하지 않은 분야의 것들을 골라서 내 생활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하기 시작했지. 그러다 보니 닫혔던 생각들이 조금씩 열리게 되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그러다 보니 이런 것이 다른 분야로 바뀌게 되어 내가 선입관이나 좁은 시야로 내 생활과 삶을 얽매어 놓은 것을 하나씩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어. 그리고 금지 시 여기던 것이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한 거야. 늘 하던 것만 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씩 찾아서 하는 묘미가 매우 쏠쏠한 것 같아.


어떤 날은 대학 졸업 후에 가보지 않았던 모교에 가서 공부하던 도서관도 가보고 매점이나 학생회관에 가보기고 하고 자주 갔던 학교 앞 분식점도 가보고 커피도 마셔보는 일상이 참 재미있는 것 같아. 나보다 20년 젊은 후배들을 보는 것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을 보는 것과 다른 기분이 든다는 것이지. 조금 있으면 우리 큰 아이도 이런 아이들 속에 섞여서 생활을 할 텐데 말이야. 그리고 가까운 대학의 교정 조용한 데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도 좋아. 이렇게 금요일 오후나 저녁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내 생활의 활력소로 자리 잡아 주말을 당신과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고 신경을 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이제는 나도 불금을 기다리는 직장인이 되었어. 그냥 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이번 주에는 무엇을 해볼까, 아니면 어떤 것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빠르면 수요일 저녁이나 목요일부터 하게 되지.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하던 불금하고 연관을 짓게 되더라고. 이것이 내가 한 살씩 먹어가면서 직장 생활하면서 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를 배워나가니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아. 너무나 불금이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외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멀리 가는 것도 아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서 나를 자유롭게 놔줄 수 있는 금요일의 오후가 계속되었으면 해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가끔씩 금요일 오후에 당신과 함께 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어. 혼자 놀면 재미없잖아. 같이 놀아야 하는 것이 부부이니. 불금을 같이 보낼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있지. 그리고 좀 더 발전하면 우리 두 아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불금 이벤트도 생각하고 있지. 우리 가족만 즐기는 불금 이벤트.


그래서 두 번 정도는 나 혼자 보내는 불금, 한번 정도는 당신과 함께 , 한 번은 온 가족이 보내는 불금을 보내려고 하고 있어. 이런 시간을 잘 분배해서 보내는 것도 우리가 한 살씩 먹어가면서 알아가는 삶의 지혜라고 생각해. 여보 기대하시라. 같이 보내는 불금에 무엇을 할지 말이야.


불타는 금요일 오후를 위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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