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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May 05. 2021

여보게,  천천히 가도 돼!

이제는 나를 위해 다르게 살기로 했다_14


 

나는 걸었다. 
 따뜻한 한낮이었고 배낭 없이 걸으니
 몸이 통통 튀는 것 같고 한결 가벼워, 정말
 당사자가 아니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터벅터벅 걷는 것이다. 그게 할 수 있는 전부다. 
 배낭이 없으면, 해방이다. 똑바로 서서 
 걸을 수도 있고 주위를 둘러볼 수도 있다.
 튀어 오른다. 활보한다. 완보한다.
 
 - 빌 브라이슨의《나를 부르는 숲》중에서 –



경제를 알아가는 이에게


지금처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던 적이 없던 것 같아. 월요일인가 싶더니 어느새 목요일을 지나 주말이 되고 그러다 보면 한 달이 매우 빠르게 가는 것을 느끼고 있어. 20대에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30대 내 아이들을 키울 때와 지금 40대가 되어서 나를 돌아볼 때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 아마도 이렇게 빠르게 사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 삶의 방식의 결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삶은 천천히 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돌아보면 오직 ‘속도’ 경쟁 시대에 살았음을 알 수 있었어. 남들보다 빨리 취직을 하고 회사에 들어와서는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기도 했지. 무엇을 하든 속도라는 기준자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 논리에 맞추어 살고 있음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 왜냐하면 경쟁의 한가운데 있었고 실제로 내가 얼마나 빠르게 살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서 일하다 보니 정해진 기한 내에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떨어짐을 의미했고 회사는 다른 회사보다 신제품이나 개발이 늦은 것을 뒤쳐지는 논리로 해석했지. 개발하는 과정이나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 오직 누가 먼저 개발했고 시장에 내놓았던 것에 우선을 두었던 것 같아.


여보,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철저하게 속도에 맞추어져 있었던 것 같아. 내가 회사에서 식사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교회에서 식사를 하던가 회사 사람들이 아닌 다른 분들과 식사를 하게 되면 나는 밥을 먼저 먹고 상대방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거야. 처음에는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당신이 나의 밥 먹는 속도를 보고 한마디 충고를 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거야. 알고 보니 나를 포함한 우리 회사 사람들의 밥 먹는 속도는 거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던 것이야. 오직 빨리 먹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쓸 뿐 음식의 맛에 대해서는 별로 느끼지 못하고 것 같았어.


속도 위주로 살다 보니 내 삶에서도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 같아. 어느덧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천천히나 여유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삶이 되었던 거야.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른 무언가가 내 삶을 차지하고 있어야지 무언가가 채워 있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내 삶은 매우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던 것이지. 이제는 그 속도를 조금씩 늦추면서 내 삶 속에서 지나쳐가는 대상들을 자세히 보고 여유 있게 보려고 해. 즉 조금씩 비워두려고 하고 가득 채우는 삶에서 조금씩 비워두는 삶으로 전환하려고 해.




여보 나의 삶이 책이라고 한다면 단기간에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시간이 가더라도 조금씩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어떤 일시적인 현상으로 인해 짧은 기간 동안 팔리는 책보다는 입소문을 타고 다양한 연령대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꾸준하게 오랫동안 팔리는 책처럼 나의 삶이 풍성해지길 원하고 있지. 매일매일의 삶을 살면서 살아가는 방향이 맞는지를 늘 점검하고 확인해 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초반에 방향을 잘못 잡더라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출발할 수 있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방향을 수정하기에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를 늘 점검하고 다짐하고 살다가도 그런 결심이 무너지는 것을 많이 경험하기도 했지. 이제는 인생의 절반 정도를 왔다고 볼 때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면 다시 한번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방향이 맞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 같아.


무엇보다도 내가 가는 방향으로 앞으로의 남은 시간을 살더라도 후회가 없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 시간이 갈수록 속도보다는 방향의 중요성을 느끼는 것은 삶의 무게 때문만이 아닐 거야. 어렸을 때, 젊어서는 알지 못했던 삶의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한 번 뿐이라는 인생의 소중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리셋을 누르고 새로 시작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늘 수정 모드로 살아야 하는 것 같아.


지금까지 삶의 책임이라고 하는 의무감이 나의 삶을 이끌고 왔다면 잠시 멈추어 서서 나의 삶에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부는지, 내 마음은 여러 갈림길에서 어떤 방향으로 향하는지를 세심하게 돌아봐야 할 것 같아. 지금까지 원하지 않던 방향이라고 하면 다시 한번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인 것 같아. 이제는 환경과 역할에서 주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돌아보는 시기인 것 같아.


평지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과 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보이지 않던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같아. 여보, 인생에서 40대는 반환점을 도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신발끈도 다시 한번 매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점검하는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 무엇보다 다시 점검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리고 그런 기간을 일부러라도 갖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쉬어가는 시간이 쉬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해야 해.


때로는 그런 시간이 ‘병’이라는 모습으로, 전혀 생각지 못한 가정사 문제로 다가오기도 하고, 아니면 직장에서 겪는 여러 가지 신분의 변화일 수도 있어.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가는 방향이 제대로 된 것인지 다시 체크해주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지. 지나간 일을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서 그런 기회가 여러 번 주어졌음을 당신과 내가 잘 알 수 있을 거야. 다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못 보고 지나친 경우가 많았음을 느낄 수 있지. 


그런 기회를 알아보는 안목이라는 것이 조금씩은 생긴 것 같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살아온 삶의 경험으로 방향을 조금씩 수정해 가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해.


느리게 사는 삶. 느리게 사는 중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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