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말타기 여행_5
유목민의 정신
사막에서 살려면 강력한 연대의식과 함께
개인 자질과 인간 가치에 대한 평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찌는 듯 더운 사막에서는 천박한 행위나 천박한 성격은
배제되고, 응결된 높은 특성,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율법과 전통만이 남는다. 유목민은 씨를 뿌리지도
땅을 경작하지도 않으며, 가축과 천막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 김종래의《CEO 칭기스칸》중에서 -
* 유목민은 메마른 사막에서도 살아남습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녀도 개인 개인에 대한 믿음과
응집력 하나만으로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헨티 캠프의 하룻밤이 지났다. 밤새 쏟아지는 빗줄기가 게르 천막 지붕을 두드린다. 작은 북소리처럼 일정한 간격과 강약을 조절하면서 경쾌하게 두드리고 있다. 밤새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깨어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58분이였다. 짧은 잠은 어제 하루 내내 차를 타고 온 피로감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더워서 일어나 옷을 가볍게 벗고 다시 잠이 들었다. 몽골의 밤은 꽤 길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뜨니 몽골 현지시간 5시 30분이었다. 아마도 한국은 아침 6시 30분일 것이다. 토요일 아침이면 가족들이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시간인데 한국이 아닌 몽골의 한적한 초원의 게르 안에서 이런 아침을 맞고 있다니 이제야 여행을 온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게르 밖으로 나오니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시원한 바람이 토요일 아침을 더욱 상쾌하게 해준다. 캠프 울타리 밖에서는 한적하게 거닐고 있는 소떼와 말떼가 초원에 차려진 아침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 있는 풍경이었다. 어디를 여행해봐도 아침에는 차의 엔진소리와 소음이 있는데 여기는 그런 곳과 동떨어진 다른 세상이었다. 아마도 몽골만이 줄 수 있는 아침 풍경이리라.
잠시 후에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듣게 될 익숙한 아침지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침 6시라고 알리면서 아침을 깨우는 ‘기상’소리와 함께 게르의 문들이 열리기 시작한다. 다들 밤새 잠을 잘 잔듯한 기분 좋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차서 따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다들 얼굴에서 빛이 난다. 와이파이나 휴대폰은 잘 터지지 않지만 아침 여행객들의 주파수는 잘 터지는 듯 하다. 칭기스터넛 캠프에는 유쾌한 주파수 표시가 최대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에는 여행객들이 모여 초원의 달리기를 한다. 아마도 이곳의 오랜 전통인 듯 하다. 삼삼오오 게르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먼저 도착한 분들이 고도원님을 비롯한 아침지기님을 따라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어제 12시간 정도의 이동으로 뭉친 근육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여기 저기서 뼈가 부딪치는 ‘우두득’소리가 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 담겨 있다. 체조를 마치고 산책으로 시작해서 가벼운 달리기를 한다. 두 줄로 달리는 모습은 군대 이후 처음 해보는 것 같다. 돌아가면서 번호를 하니 고도원님까지 딱 80명, 밤새 ‘안녕’하신 것을 확인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아침 운동에 나오셨다. 적당한 거리를 달리고 돌아오는 얼굴에는 신선한 미스트(mist)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 정도의 날씨라면 말타기에는 먼지도 나지 않는 최상의 조건이라 더욱 기대되는 주말 아침이다.
각자 세면을 하기도 하고 아침 달리기에 이어 캠프 주변의 풀밭을 산책하시는 분들도 보인다.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아침지기님들이 틀어놓은 모닝 음악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여행객 중 한 분이 플루트 연주를 직접 하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쾌한 아침도 좋았는데 거기에 라이브로 좋은 음악을 푸른 초원에서 듣는 행운까지 더해지니 이번 여행의 출발이 너무나 좋다.
아침식사 후에 오늘의 아침편지를 시작으로 말타기 준비를 했다. 오늘의 아침편지는 ‘유목민의 정신’에 관한 것이다. 유목민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씨도 뿌리지 않으며 오직 가축과 천막 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에게도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성을 쌓지 않고 안주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몽골에는 한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모든 것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주위 환경을 잘 살펴야 한다. 아마도 이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맞는 말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국제 정세나 국내 정세가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변하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을 놓고 무역문제로 패권 경쟁으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처럼 하늘과 바람의 방향을 잘 살펴야 한다. 몽골 초원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이다. 언제 비가 오고, 천둥 칠지 모르고 햇볕이 내리 쬘지 모른다.
오전에 말을 타려고 아침에 모여 복장을 갖추고 다들 중앙식당 앞에 모였다. 그리고 마을 타기 위한 복장인 ‘각반’을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아침지기의 시범에 따라 발에 착용했다. ‘각반’이란 말은 고등학교때 교련복의 바지 밑단이 펄럭이지 말라고 복숭아 뼈 근처에 조인 각반과 비슷했다. 다만 다른 것은 말과 접촉하는 면에 부드러운 스폰지를 대고 무릎까지 대는 가죽과 비슷한 재질로 이루어진 것만 다른 점이었다. 물론 승마용 바지를 입고 승마용 부츠를 하면 이럴 필요는 없겠지만 처음 타는 우리에게는 그런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각반을 착용하고 캠프주인 마님인 ‘한다’님으로부터 말을 타는 방법과 주의 사항에 대해서 들었다. 말을 처음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안전 사항이 무엇보다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몽골의 말은 자연의 말이기에 더욱 조심해서 타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말은 민감하고 겁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말의 뒤쪽으로는 가지 말아야 한다. 뒷발의 발길질로 인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을 탈 때는 왼쪽에서 타고 왼쪽 발을 걸고 한 번에 오른발을 들어 타야 한다. 말의 고삐는 운전대와 같기 때문에 함부로 잡아당기지 말고 천천히 당겨야 한다는 것을 숙지했다. 아침부터 보이지 않던 말들이 캠프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말 조교들이 자신들이 기르던 말을 가지고 멀리서 언덕에서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한 마리를 어떤 사람은 여러 마리를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 제법 모이니 푸른 초원에 말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최소한 아침여행객과 아침지기와 조교를 태우려면 최소한 88마리의 말과 말 조교까지 합하면 약 150여 마리의 말들이 모여드니 그 또한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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