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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달리겠지

10km를 뛴다고? 내가?

by 갓노묘반려인
첫 10km를 뛴 날



학창 시절 의무로 뛰어야 했을 때 빼고는 단 500m도 달린 적 없던 내가 10km 마라톤 신청을 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참 나다운 무모함으로 도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대부분 어떻게든 됐었다. 마라톤도 마찬가지여서 이렇게 부끄러운 글을 쓴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처음 3km를 달렸을 땐 희뿌연 안갯속을 달리는 것 같았다.

‘10km는 이것의 세배가 넘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창피하지만 지금이라도 ‘나는 재능 없는 사람인가 봐’ 하며 웃어넘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럴 땐 자존심에게 참 고맙다.



5km를 처음 달렸을 땐 배가 많이 아팠다. 호흡을 억지로 조절했기 때문이다. 마시고 뱉는 것을 얕게 하니 어딘가에 무리가 갔었다. 그러면서 호흡하는 법을 검색했다. 여러 방법을 찾았고, 해답은 간단했다. 나답게, 자연스럽게 숨 쉴 것.





7km를 달렸을 땐 미친 듯이 힘들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게 도대체 뭔데? 여전히 의문이었다. 남은 3km를 더 뛰어버리면 내가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10km를 뛰고 하프 마라톤에 나가며 풀 마라톤을 뛰는지 새삼 경이로웠다.



그렇게 차츰차츰 뛸 수 있는 거리를 늘려갔다. 우당탕탕 정신없이 사는 내게 달리기는 꾸준함과 인내심의 열매를 정직하게 알려줬다. 체력은 꾸준히 좋아졌고, 살찔 걱정은 조금씩 접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끝까지 해보려는 근력이 생겼다. 달릴 때는 요령 따위 피울 수 없다. 그저 묵묵히 땅 위를 달려야만 완성되는 그 행위는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다시 삶의 싱그러움을 안겨줬다.



2025년 4월, 마라톤에 나가보니 더 잘 뛰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의 에너지가 남달랐다는 점. 투지와 여유가 공존했다. 나보다 두 배 넘는 거리를 뛰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10km를 뛰는 우리들을 응원했다. 진심 어린 격려는 꽃이 된다. 나도 오래 달리는 사람이 되어 이름 모를 이에게 꽃을 건네는 순간을 상상했고, 자연스럽게 하프 마라톤을 목표로 갖게 되었다.



나는 요즘도 달린다. 꾹 누르면 초록색 즙이 물컹하고 터질듯한 오뉴월 초록빛 강가를. 하나 달라진 점은 이제 혼자 달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와 가끔은 손을 잡고, 때로는 침묵하고, 자주 웃으며 그렇게 함께 천천히 달려본다. 목적지는 없다. 그냥 계속 달리다가 넘어졌다가 가끔은 쓰러지면서 아마 그렇게 오래, 우리에게 허락된 만큼 달리지 않을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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