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사 우즈,『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
이 책을 재밌게 읽은 분이 있을 거란 생각에 다른 의견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다정함이란 키워드를 내세운 만큼 인류의 다정함과 생존에 관한 합당한 근거를 기대했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약간 의아함이 든 건 다른 동물들인 침팬지, 보노보, 여우의 사례를 들면서 친화력 있는 유전자가 살아남는다는 결론을 취하는 저자의 스탠스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현존 생존 최강자 바퀴벌레를 먼저 연구해 친화력이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묘한 반감이 듭니다. 포유류 한정이라고 하기에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선 그으면서 유전자 차이가 있으니깐 친화력 있는 유전자가 살아남았다!라고 주장하는 건 약간 억지로 친화력을 강조하느라 다른 동물 사례로 끼워 맞추면서 합리화하는 게 아닐까요? 마케터의 욕심인지 저자의 욕심인지 제목과 내용이 다르게 흘러가 읽는 내내 혼란이 왔습니다. 차라리 제목을 '협력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라고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이렇게 제목을 지었다면 팔리지는 않았겠네요.
그렇다면 다정하지 못한 사람, 친화력이 부족한 사람은 도태되어야 하는 건가요? 도태되었을까요? 친화력은 억지로 발휘되는 건가요? 유전자 결정론으로 따져보자면 벌써부터 마음이 갑갑해집니다. 다시 고민해 봅니다. 저자는 생태학, 정치, 사회심리학 등 다양한 이야기에 욕심내느라 조금은 빠뜨린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고요. 저자의 유전자 결정론과 다르게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인류는 수렵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식량 비축을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고 돌아다니지 않고 정착할 수 있었죠.
하지만 단체생활에 정치는 빠지지 않습니다. 힘의 우열만으로 식량을 조달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농경생활을 하는 인류는 힘으로는 협력을 이끄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혼자서 그런 생산성을 낼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 위해 지식을 전달하면서 우리는 친화력을 발달시켰습니다. 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해 말이죠. 물론 다정하다면 큰 메리트가 있습니다. 신뢰를 더 얻기가 좋습니다. (하지만 다정한 신뢰관계 또한 숨겨진 전제 조건이 있겠죠)
읽는 내내 찝찝했던 건 다정함이란 수단에 얽매여 생존을 들먹이며 마치 죄책감을 씌우는 거 같이 느껴졌습니다. 자연선택으로 다정하지 못한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존에 대응하기 위해 각기 다르게 신뢰하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거지 인류가 여태껏 다정해서 살아남았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늑대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자식을 지키는 아버지의 마음이 다정하다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가페 사랑에는 구구절절 꼬리표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에도 저자가 언급한 가축화와 타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는 살아가면서 좀 더 서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새롭게 관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다정함을 무시한다는 건 아닙니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지치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다정하진 못해도 다정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선택적으로 최선을 다해 다정해지는 걸 지향하는 저에게는 나름 따뜻한 합리화 수단이 생겼달까요. 각자의 다정함이 있다고 믿습니다! 서로의 기대 방향이 다를 뿐이겠죠.
문득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가 떠오릅니다.
"내가 너와 같이 놀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지. 내가 너에게 길들여지는 거야"
"길들여진다는 게 뭐야?"
"그건 마치 따뜻한 태양이 나의 가슴속에 가득 차있는 느낌과 같은 거야"
한줄평 : 다정함이란 뽕을 취하고 길을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