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조 팰러디노,『스마트폰을 이기는 아이』를 읽고
요즘 ADHD라는 말이 흔하게 들립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이런 주의력 결핍장애가 있다고 각종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있어요. 사실 저도 주의력 부족이 있지 않을까 지레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려주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책이 바로 이겁니다. 저자는 현재 미디어 시대를 부정하지도, 무작정 비난하지 않은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SNS가 활발하고 유튜브로 정보를 공유하고 대화를 하는 시대에 이런 아이들을 삐뚤게 바라보지 말고 '디지털 시민'이라고 존중하라고 말이죠. 예전에는 백과사전으로 정보를 찾고, 네이버와 구글로 검색했다면 요즘 세대들은 유튜브로 검색을 한다고 하죠? 그만큼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아이들이 뛰어놓는 공간이 이젠 놀이터가 아닌 가상현실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딜레마, 휴대폰 쥐여주어야 하나? 뺏어야 하나?
디지털 시민인 아이들은 올바르게 길러져야 합니다. 정보를 얻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아이들은 발달과정에서 육체적, 정서적인 성숙이 필요하죠. 저자는 주체적인 성장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요즘같이 디지털 매체들은 순식간에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습니다. 코로나 거리 두기 정책이 해제된 첫 어린이날에 놀이공원을 갔던 지인의 말이 생각나네요. 사람이 가득했던 놀이공원에서 기구를 타는 시간에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쥐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다리는 시간에 불평하지 않고 알아서 잘 논다고요. 주변을 둘러보면 심심치 않게 아이들이 폰을 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에서 올바르게 교육해야 하는 게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른인 저 역시 심심하면 휴대폰을 보고 있는지라 어떻게 스마트폰을 이겨야 하지는 막막하더군요. 그만큼 나중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참에 제대로 스마트폰을 써보자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인간의 의지가 지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능력은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운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이다.
저자는 수동적인 비자발적인 주의와 주체적인 자발적 주의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비자발적인 주의는 쉽게 비유하자면 외부의 다양한 자극들을 받아들일 때 나옵니다. 이런 비자발적인 주의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인류가 살아남은 건 야생에서 다양한 정보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행동했기에 살아남았으니 이런 비자발적인 주의는 아주 효율적입니다. 자발적 주위는 말 그대로 어려운 길입니다. 스스로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상위인지력' 즉,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되물어보는 능력입니다. 이 역시 쉽지 않습니다. 한번 비자발적으로 가버린 주의력을 자발적으로 되돌리면 저항을 맞습니다. 비자발적인 주의가 더 힘이 세고 경험칙상 더 유리하다고 두뇌는 판단하는 거죠. 디지털 매체는 이를 아주 잘 사용하고 있어서 우리의 이목을 한 번이라도 더 끌어 비자발적 주의 상태가 되도록 다양한 정보들을 우리에게 뿌려댑니다.
#부모와 아이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항상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하는 행동은 결국 부모가 해온 행동입니다. 아이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이 사실은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 곁에 가장 가까이 있고 오래 보는 사이이니 자신이 좋은 롤 모델이 되어야겠죠. 전 아직 미혼입니다만 많은 습관들이 부모님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배워서 따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고치고 싶은 행동들이 있지만 쉽사리 바뀌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난 후에는 아이들 앞에서 행동을 올바르게 해야겠단 다짐을 하게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자발적 주의를 많이 해야겠지만 평소에도 계획적으로 스마트폰 보는 루틴을 짜봐야겠습니다.
한줄평 :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