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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일기 Oct 25. 2022

레이디, 속죄는 자기만족이 아닙니다

이언 매큐언, 『속죄』를 읽고 (1)



감상평을 우선 남기고, 책에 대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중에 할 만큼 재밌었다.



문학, 특히 소설은 어떤 교훈이나 지식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에서 자유로운 분야라 해석의 논란이 늘 함께 한다. 이 책 속죄는 저자 이언 매큐언의 섬세한 상황 묘사에서 비롯되는 인물의 감정선만을 따라가기에는 그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 띵작이기에 2편으로 나눠 우선 개인적인 감상평을 남기려고 한다. 리플리 증후군과 연극 그리고 브리오니를 집중해서 조명해보자. 사춘기인 그녀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느끼는 건 마땅히 누구나 거쳐가야 할 성장통이다. 불명확한 자기 정체성은 주변의 인정과 믿음을 빠르게 갈망한다. 사랑을 받는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연극으로 자신을 뽐내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있어빌리티 한 연극은 너무나 어설퍼서 어른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함을 깨닫고 좌절에 빠졌다.



그 와중에 로비가 건네준 음란한 편지는 그녀에게 얼마나 달콤한 떡밥이었을까? 그녀의 본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꽉 쥐려고 한다. 어린아이는 다시 망상에 빠진다. 연애편지 하나를 간판으로 내걸고 어른들과 함께 뛰어놀 신나는 놀이공원으로 꾸며낸다. 로비가 괴물이고, 롤라가 피해자인 유령의 집에 어른들을 초대한다. 여보세요! 동네 사람들 여기 파렴치한이 있어요! 제가 발견(설계)했답니다! 치기 어린 마음이라고,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아이의 응석받이라고 소설 속 인물처럼 덮기에는 그녀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녀는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사실상 사회적 종신형 또는 살인형을 선고한 심판관으로써 그 역할에만 충실히 맡아 쭉 살았어야 했다. 속죄한다는 의미로 펜을 들어 소설을 쓴다는 서사는 혐오와 증오를 남긴다. 



 자, 그럼 브리오니 주변의 어른들은 잘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욱더 입을 굳게 다문다. 10대 초반인 브리오니가 범인을 로비라고 지목한 특정 명제는 주변 사람들이 동의를 할 때만 참으로 비로소 인정받는다. 망상증인 소녀의 증언과 연애편지 1장으로 너무나 쉽게 유죄추정의 원칙을 로비에게 적용하는 전개가 의아하지만 소설적 허용으로 쿨하게 넘어가자.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기도 하니. 그렇게 브리오니는 하나의 '인격체'로 잠시나마 존중받았지만 그 대가는 어른들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로비가 진짜 범인이건 아니건 그들에게 이미 중요하진 않았다. 이런 불결하고 불미스러운 사고를 어떻게 자신들의 지위, 가족, 가문들에 피해가 없게 조용히 넘어가게 할지 계산기를 두들기기 바빴다. 브리오니가 꿈꾸던 어른들은 서로의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서 희생양을 빨리 세워 처리해야 했다. 그들의 이기적인 면모를 감추는 가면을 쓴 채로 로비를 화형대에 능수능란하게 올린다. 섣부른 판단을 마치 한 두 번 겪어본 게 아닌 듯 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어른답게 처신하는 척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마지막 부분 내용이 혼란스럽다. 소설 막바지에 그녀가 끝내 로비와 세실리아가 서로 만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 모든 서사가 브리오니의 망상이자 소설이라면? 수백 쪽인 장편 소설을 힘겹게 읽었다.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의 과잉 망상과 어른들의 우발적 표적 수사라는 대환장 콜라보는 끝끝내 완전범죄라는 혼돈의 무한루프에서 헤어나질 못하게 한다. 진정한 속죄는 당사자가 종결시킵니다. 레이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끝까지 제3자인 독자에게 판단하게끔 떠넘기십니까? 피해자를 직접 마주할 용기가 있을 때 잘하셨어야죠. 미 종결된 사건을 소설로 추억팔이까지 하는 당신은 여전히 철없는 애송이일 뿐입니다.




한줄평 : 속죄하기엔 저지른 원죄가 너무 크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몰입해서 읽은 띵작. 과몰입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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