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애도인가

각자의 방법

by 고도띠

해피가 떠났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오열했다.


엄마를 모시고 동물병원에서 마주한 해피.

이미 떠났지만 살아있는 것처럼 아직 따뜻했다.


그 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쓰다듬고 눈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수의사는 해피가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하며, 여러가지 설명을 해줬으나 사실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 품 안에서 떠났으면 좋았을까 싶은 후회도 남았다.

하지만, 그나마 병원에서 조치를 받으면서 떠난 게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기에 묵묵히 받아들였다.




이제 해피의 장례에 대해 논의를 했다.

엄마는 이미 예전에 해피가 한 차례 고비를 넘겼을 때부터 장례에 대해 고민을 해오셨다고 한다.


다른 강아지와 합동 화장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개별 화장을 하고 유골을 따로 집에 가져오는 것은 엄마가 너무 괴롭다고 하셨다.


해피가 제일 따르고 좋아하던 사람은 우리 엄마다.

또한 엄마도 해피를 정말 좋아하셨다.

아마 그동안 우리보다 해피의 마지막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오셨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결정을 존중해드렸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으로 해피를 쓰다듬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고 와서 그런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지

한동안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저녁 잠에 들기 전 눈을 감자마자, 병원에 두고 온 해피가 떠올랐다.

너무 보고싶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쓰다듬고 싶지만 쓰다듬을 수 없는 해피의 모습이 선명하게 생각났다.


그 후에 가끔 드는 생각이 개별장례를 치뤄줬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장례식 이라는 절차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것이지만,

또한 남은 가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애도하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며 서로 위로 받는 시간.


사람만 장례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한 생명이 무엇이든 장례를 치르는 의식이 많아지고 있다.

물고기, 거북이, 햄스터 등 사랑을 준 대상에 대해 충분히 애도하는 장례를 누군가가 볼 땐 '신기하다'로 볼 수 있지만, 그 사람은 어쩌면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애써 이겨내기 위한 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것 또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각자의 방법이기도 하다.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해피는 내 마음 속에 묻어줬다" 라고.


나 또한 해피를 내 가슴 한 켠에 묻었다.


그래서 그런지 꿈에 한 번도 안나와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