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싶지 않지만, 슬프고 싶어

묵힌 감정들

by 고도띠

슬픔이라는 감정은 늘 겪을 때마다 적응이 안된다.

가슴 중간부터 쎄하게 올라오는 통증들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눈물들.


울어버린다고 풀리면 좋으련만,

울면 울수록 기력이 떨어지고 몸의 수분이 메마르는 느낌 뿐이다.


해피의 마지막을 볼때도 나는 나름 정량껏 울었다.

너무 많이 울고 괴로워하면 내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적절히 슬프고 적절히 감정을 털어내는 것.

그것으로 내 마음이 무뎌지길 바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슬픈 감정에 압도당하기 싫었다.

내 감정 뿐만 아니라 몸도 허약해지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불안장애를 겪은 적이 있는 만큼,

부정적 감정에 압도당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마음만 고통스러운게 아니라 육체까지 고통이 따른다.

진료받아도 정상이지만 몸은 계속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긍정적이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이번 해피가 떠난 일도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했다.


'해피가 더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떠나서 다행이다'

'해피는 착했으니까 강아지별에서 신나게 놀다가 우리를 기다리다가 마중나와줄거야'


저 문장만 생각한다면, 나는 덜 슬퍼야 맞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해소되지 못한 슬픔이라는 감정이 묵혀져 있을 뿐이다.




해피의 유품을 내가 챙긴 건 내 마음에 위안이 돼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어느 날 슬프고 싶을 때 꺼낼 수 있는 흔적을 남겨둔 거 아닐까 싶다.


나는 슬프고 싶지 않다.
하지만 충분히 슬프고 싶다.


사랑한 만큼 슬픈 건 당연하고, 그 슬픔을 피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충분히 느끼는 것.

그렇게 슬퍼하다가 눈물에 흘러갈 추억과 아련함.


그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당할 용기.

그것이 나에게 필요했다.




슬픈 감정에 대해 본질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슬픈가?


'다시는 볼 수 없어서?'

'사랑하던 대상이 줄어들어서?'

'해피를 품에 끼고 사시던 부모님이 걱정돼서?'


생각할수록 슬픔 저 너머에 두려움이 깔려 있던 거 같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두려움'

'또 다시 미래에 마주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부재에 대한 두려움'

'부모님의 슬픔을 바라봐야하는 두려움'


슬픔은 결국 두려움과도 일맥상통한다.




여전히 해피의 털과 목줄은 내 서랍 한 켠에 간직하고 있고,

내 마음 한 켠에도 슬픔과 추억을 간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