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너 변했어..'
연인끼리 흔히 쓰는 말.
'너 원래 나 별로 안좋아한거 아냐?'
사랑을 의심하는 말.
커플끼리 흔히들
서운해하고 속상해하는 일은
내 애인이 예전과 같지 않을 때다.
처음에 나를 꼬시려고
잘하는 척만 한 거 아니냐고
의심을 하기도 하고,
초반의 열정이 식었다면서
핀잔을 주기도 한다.
물론, 어떤 특정한 이득을 위해
(예를 들면, 몸만 노린다거나 돈만 노린다거나)
꼬시려고 했다면 나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커플들은 처음 사랑에 빠질 때
자신의 150%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긴 하다.
몇 번의 연애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초반에 끌어올릴 수 있는 100%를
인위적으로 완급조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정신을 못차리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될 점은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강렬한 사랑을 느끼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호르몬 작용이 줄어들면
평정심을 되찾아간다.
상대가 변한 것 같다고 서운해하기 전에
사실 나도 변한 부분이 꽤 존재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걸 알게 되면
상대의 마음에 대해 의심을 줄일 수 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정도가 아니면
사랑의 강렬한 느낌은
확실히 줄어드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니까.
예전에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사랑스러워하고 꿀이 떨어졌는데
요새는 무덤덤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그 사람의 진심까지도
의심하게 되는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과거에 내게 보여준 표정과 눈빛은
진심일 확률이 높다.
특히 사람 눈빛은 진심이 잘 드러나는데,
일부러 연기를 하려는게 아니라면
당신이 느끼던 그 사랑은 진짜다.
그 당시의 사랑이 진짜인 것과
현재의 사랑이 그 때와 동일하거나
그 때보다 더 커지기는 것은
필수 관계가 아니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걸 간과하다보면
상대의 진심을 모두 의심하게 된다.
물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는
설렘과 도파민 잔치가 끝난 후
상대에 대해 알아가며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수용하는 과정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막상 내 앞에 예전과는 다른
시크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연인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지면서
의심이 싹트는 것이다.
바다가 잔잔해보여도
물은 끊임없이 흐르며
파도를 만들어낸다.
모든 것은 변하고 흐른다.
사람의 감정 또한 그렇다.
어느 날은 내가 더 좋아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상대가 날 더 좋아하기도 한다.
초반에는 상대가 나를 유혹했으나
이제는 내가 상대를 유혹하고자 한다.
사람의 감정과 사랑이라는게
인위적으로 줄이고 키우기는 어렵다.
겉으로는 아닌척하며 숨긴다거나
좋아하는척하며 오바할 순 있어도
내 마음 크기를 쥐락펴락 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우리는 이별 후에도
별로 힘들지 않았을 것이고,
한 번 연인이 되면 끝까지 갔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랑은 강렬하게 타오르다가도
쉽게 꺼지기도 하며,
잔잔한 모닥불처럼 은은하게 타들어가기도 한다.
예전에 나를 바라보던 그 반짝이는
눈빛은 진심이었고,
지금 나를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도
현재의 감정일 뿐이다.
과거의 사랑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 때의 그 사람'은 진심이었으니까.
나를 갈망하던 그 표정도 진심이었고,
소중한 것을 아끼던 그 행동도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우주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행복을 느끼던 나도 진짜였다.
오로지 현재의 감정을 음미하면 된다.
나 또한 그렇다.
상대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해도
그 또한 감정의 흐름임을 이해했다.
몇 년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것은 어쩌면 사람의 성향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뭔가 하나를 꾸준히해도 잘 안질린다거나
자극추구가 적거나,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등의
개인 고유의 특성도 영향이 있을 듯 싶다.
다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있다면
부모로서의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이다.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넘어서는
혈육에 대한 사랑이 가정을 유지하는데에도
큰 몫을 할 것이다.
이래서 부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의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녀간의 도파민 호르몬 작용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은
이제 흔하게 들어서 다들 알 것이다.
2~3년 정도면 그 작용이 끝난다고 하는데
그 뒤로는 서로에 대한 정과 의리,
또는 제일 가까운 친구와의 우정같은
감정으로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사실 생각보다 서운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 조차도 도파민의 흥분이 가라앉았으면서
상대에게는 몇년이 지나도 똑같은
호르몬 작용을 기대하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특히나 감정은 강요할수록
더 튕겨나가기 쉽다.
나를 연애 초반처럼 바라봐주고
사랑해달라고 떼를 쓴다면
오히려 더 정이 떨어질 수 있다.
그저 감정의 흐름을
튜브에 태워 바다에 띄워보자.
어떤 튜브는 망망대해로 떠내려갈수도,
어떤 튜브는 무사히 목표지에 닿을 수도 있다.
어느 날은 예전처럼 애틋한
감정이 드는 날도 있고,
어떤 때는 더이상 상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날도 있다.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1단계가 쌓이고 그 다음 단계가 쌓이는 것.
그렇다고 1단계가 거짓은 아니다.
10단계에서도 무너져 내릴 수 있는게
감정선이다.
사랑은 순간 순간의 감정이
모이고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순간을 모두 소중히 여기면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사랑이
앞으로 5년, 10년, 20년을
당연히 지속시켜줄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자
나는 한 결 마음이 편안했다.
'예전에 나를 그렇게 사랑해놓고
어째서 이렇게 변한거야?!'
라는 원망도 줄어들게 됐다.
오히려 그 당시의 사랑이
얼마나 찬란하고 소중했는지
더 절감하게 되면서,
매 순간의 사랑을
당연히 여기지 않게 됐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는게
당연한 건 아니니까.
그렇기에 상대의 감정이 떠난다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물론 마음은 아프겠지만,
그만큼 상대의 감정을 존중해주게 됐다.
나 또한 내 감정을 자만하면 안된다.
지금 저 사람을 절절히 사랑하니까
앞으로도 내 마음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오만함만 없다면,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오히려 내가 변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앞으로 수많은 세월동안
다양한 일이 펼쳐질텐데,
어떠한 사건에 의해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이
끼쳐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 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좀 의심하는 편이다.
'나는 마음이 절대 안 변해요'
'나는 절대 먼저 헤어지자고 안해요'
'난 한 번 사랑하면 끝까지 가'
절대값으로 사람의 감정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데도
자기 확신에 빠져있는 것을
의심하는 편이다.
나는 항상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내 마음도 상대 마음도 변할 수 있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은
그것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매 순간 감사하며 사랑하자'
어찌보면 매정해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마음가짐이
사랑을 쉽게 여기지 않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맨날 회사 관두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회사를 제일
오래 다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끝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소중하게 빛내준다.
우리 인간에게 삶이 소중한 이유도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먹고 있는 맛있는 디저트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양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끝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금방 무료해진다.
사랑이란 감정이 영원할거란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제 그 사람이 현재
나에 대해 무덤덤하다해서
과거의 사랑까지 의심하지 않고
그 또한 반짝이던 보석처럼
간직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