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

명확한 경계선

by 고도띠

앞서 이야기했던

자의식 과잉에도 기재한 내용이지만,

나와 너의 경계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말로 사랑한다고 표현할 때

우리는 보통

'사랑해' 라는 단어를 쓴다.


그런데, 영어로는

I Love you 로 표현한다.


나는 사랑한다 너를.

나와 너의 구분이 명확하다.


나의 경계선이 뚜렷해야

타인의 경계선을 인정해준다.


타인과 나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우리 라는 개념이 생길 때부터는

어쩌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은

상대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 벽을 서로 넘나들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나의 경계선이 명확하고,

타인 또한 자신의 경계선을 잘 지키며

서로를 사랑한다면,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보인다.




'나는 이런데, 너는 왜 안이래?'

'나는 그거 싫은데, 넌 왜 그래?'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왜 다르게 생각해?'


이런 생각들은 사람들을

성숙한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든다.

저런 질문들이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라는 우리(于里) 안에 가두는 것이다.


'나는 이런데, 너는 안그럴 수 있겠네'

'나는 그거 싫은데, 넌 좋아할 수도 있겠네'

'나는 이렇게 생각해도, 넌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네'


라는 생각들이 결국 진정한 존중을

만들어주면서,

그 사람 자체를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는 나 스스로를

타인에게 흡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남이 좋아하니까 좋아해야되고,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되고,

남들이 줄서니까 나도 줄서야되고,

남들이 안좋게 보니까 나도 싫어하는 것은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나는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알게 된다.

내 자신 조차 존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겠는가.




누군가는 이런 내용들을 보면

너무 정없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족이나 부부나 친구끼리

너무 서로 경계를 긋는 것은

더 친해지기 어렵다고 말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담이긴 하지만,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흡수시키려는

모임이나 관계일수록 결국 끝은 좋지 않았다.


가족끼리도 서로 경계가 없다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우리 엄마 아빠도 좋아해야한다고

생각하거나, 강요한다.


친구끼리도 내가 추천하는 제품을

당연히 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 각자가 원하는 욕망과

경험은 제각각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한 두번은 가능할 수 있다만,

무조건 친구니까 같은 것을 바라봐야

그걸 인정해주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아마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나의 경계가 침범 당한 경험은

다들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한 번이 아니라 숱하게 있을수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상대의 경계를

침범한 적도 꽤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연애하면 기념일은 꼭 챙겨야하고,

통화 끊기 직전에는 꼭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남사친, 여사친은 모두 정리해야하고,

한달에 한 번은 꽃을 사다줘야하고,

자기 전에 무조건 통화를 하는 것 등등


이것이 어떤 변수에 의해

지켜지지 않을 때는

상대에게 서운함을 쏟아내곤 한다.


물론 결혼생활은 일종의 규칙이 필요하다.

그냥 서로 사랑만 하는 상태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전우애를 느끼듯

함께 삶을 개척해나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경계는 계속 침범 당하면서

나만 상대의 경계를 지켜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다.


이걸 구분할 줄 아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만약 내가 어느날부터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거나,

사소한 일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내가 하는 일에 심각하게 자신감이 떨어진다거나,

나 스스로를 한심하다 생각하게 만드는

연인 또는 가족과의 관계는

이어갈 필요가 없다.


당장은 상대가 나를 흡수해가면서

내가 결정하고 생각하는 것을

대신 해주는 것에 편리함을 느끼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아는 점점

무너져 갈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상대방이 없을 때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하고, 위태로운 존재가 된다.


결국 '나'는 없고 '우리'만 남게 되는 것.




나라는 경계가 명확해져서야

너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자아를 상대에게까지

확장시켜서 내가 비대해지면,

상대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일도 많고,

이해안가는 일도 많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자아 확장은

상대를 통제하려 들게 된다.


흔히들

'내 애인이 내 마음 같지 않다'

라는 말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문장이기도 하다.

왜 내 애인이 내 마음과 같아야 하는가?

완전히 서로 다른 개체인데 말이다.


아무리 오래 함께 한 친구나 연인도

나와 같은 마음일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나의 마음을

상대에게 정확한 말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 하고,

서로 합의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에 대해

내가 먼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고 알 수 있다는

사람들을 제일 경계해야 한다.


말로 전달해도 때론 오해하는게

서로의 마음인데,

말을 하지 않고는 절대 상대가

알아줄 수 없다.


나와 너는 우리(于里) 를 만들 것인가.

우리(We) 안에 나와 너를 공존하게 할 것인가.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