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잔재: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꿈꾸일] 꿈을 꾸는 일기 - 2

by 고도필

이제는 잊었다고, 다 괜찮아졌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있다.


오랜만에 유학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랜 지인들을 만났다. 10년 넘게 알아 온 그들이 나에게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과 분위기가 달라졌고, 이제는 '눈치 보는 한국인'이 된 것 같다고, 한국 생활이 많이 힘들었냐고 물어왔다.


사실 한국에 다시 들어왔던 순간부터 나는 이 사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 튀고 싶지 않은 마음,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따돌림당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나마 대학이라는 울타리, 20대 특유의 에너지 덕분에 본질적인 내 모습은 그나마 간직할 수 있었다.


변화의 급물살은 인턴쉽과 함께 찾아왔다. 처음 하는 사회생활이었는데, 심지어 제3 국이었다. 힘들었다. 심지어 상사도 만만치 않았다. '말대꾸를 한다'며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 일은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도 나를 잠식하고 있다. 이때부터 나는 쉽게 순응하고, 수동적이고, 눈치를 많이 보는 만만한 20대 직장인이 되었다. 당당함과 솔직함이 매력이던 지난날의 나는 파도에 무너진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턴쉽이 끝나고 들어간 첫 번째 직장은 정말 좋았다. 같이 일하는 동료, 상사 모두가 친절하고 나를 이해해 줬다. 단순히 커리어적 욕심으로 그곳을 나왔고, 한동안 방황한 만큼 이때 퇴사한 것에 대해 오랜 시간 후회하기도 했다.


두 번째 회사는 나에게 우울증과 번아웃은 안겨줬다. 남을 헐뜯고 배척하는 분위기에 물드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의지가 되는 동료도 분명히 있었지만,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한동안 사람을 의심하고 기피하게 됐다. 정신과를 다니고, 약을 먹고 끊고를 반복하고, 죽고 싶어서 울고. 최근에는 내가 다시 괜찮아졌다고 생각해서 이때 같이 회사를 다니던 동료를 만났는데, 다시 만나니 그때 느꼈던 기분이 다시 느껴지더라. 다시금 천천히 사람들과 멀어져야겠다고 다짐했고, 과거의 잔재는 쉽게 지워지지 않음을 느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변한 내 모습을 보며 한없이 서글퍼졌다가, 변한 내 모습까지 온전한 나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유학시절 지인과의 만남이 후 다시 내 속에선 의문이 생겼다. 변해버린 나의 모습에 나는 만족하는가? 지금의 나는 나를 공격해 오는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상처받고, 다시 우울해지는 건 또 내 몫이었다.


나는 어릴 적의 나, 본질적인 나의 모습을 되찾고 싶다.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너그러운 사람.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 거절할 줄 아는 사람.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나를 지킬 줄 알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과거의 경험과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잔재들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 내 몸 깊숙이 박혀 있다. 이 흔적을 마주하고,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과 노력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삶을 갖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완벽하게 잊고 씻어낼 순 없겠지만, 또렷하게 마주 보고 맞서 이겨내고 싶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 원래의 나를 찾고 싶다.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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