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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Nov 07. 2019

꼰대라는 단어가 불편해졌다.

스타트업에서 오퍼레이터로 살아남기_꼰대 편

꼰대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이다. (출처: wikipidia)



최근, ‘꼰대’라는 단어가 BBC 방송에서 오늘의 단어로 선정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BBC 방송에서는 꼰대의 정의를 ‘남의 의견은 틀리고, 본인의 의견이 항상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라떼는 말이야...’ 짤이 등장하며, 각종 광고를 도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90년대 생들이 온다.’라는 책이 큰 공감을 가져오기도 하고,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새로운 세대를 파악해야 한다면서 이 책을 청와대 전 직원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출처: ‘삼성생명’ 유튜브 캡쳐)

이렇게 꼰대는 마치 나이 많고, 융통성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통용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인터넷과 서점가에는 ‘꼰대 테스트’,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에 대한 제목을 가진 온갖 콘텐츠가 난무한다. 실제로 90년대생이 아닌 사람들은 꼰대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고 본인의 생각을 확인하고 계속 확인한다.(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가끔 아랫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내가 꼰대라서 그런가 하며, 퇴근길에 ‘90년 대생들이 온다.’를 펼쳐보곤 한다. 꼰대 테스트에서 ‘꼰대 새싹’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뜨끔하면서도 ‘아닉, 그렇게 꼰대는 아니구나.’하는 마음에 안심을 한다.

출처: 봉봉 꼰대 테스트 캡쳐본


그러다 가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맘속의 분노가 치민다.

애써 참아보려 하지만, 결코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애티튜드가 ‘과연 나이 때문인가?’라는 의문도 든다. 결국, 또래 동료 혹은 친구들에게 상담을 하면 ‘꼭 나이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원동력이 되는 스피릿이 없어서.’라는 공감을 얻는다. 공감을 얻고 다시 세련되게 대응을 하려 하면, 이미 세련될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 그럼 또, 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다음에는 꼭 세련되고, 꼰대 같아 보이지 않게 대응해야지.’ 다짐을 하곤 한다.



그렇게 나의 화는 쌓여간다.

나는 여기서 의문을 갖는다.


‘꼰대가 과연 나쁜 것일까?’


어느 순간 꼰대라는 단어로 회사에서 팀원에게 요구하는 것도 아랫사람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경험에 빗 데어 말하는 것조차 꼰대와 많은 경험치를 가진 시니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회사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제가 꼰대인 걸까요?’라는 상담을 한다.



꼰대라는 말이 불편해졌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다. 항상 열려있고, 새로운 인풋을 환영하며,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세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혹 가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발언을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며, 목부터 턱 막히는 그 까칠한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꼰대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럼 그날 하루는 ‘이건 밀레니얼이라서 그런 건가, 아님 예의가 없어서 그런 건가.’에 대한 논지를 놓고 여러 비교군들을 대입해본다.



꼭 밀레니얼이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그렇게 대입하다 보면 사실 나이 때문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내가 생각한 최소한의 예의(예를 들면, 회사 업무 외에 외부에서 개인적으로 하는 프로젝트가 많아 본인이 담당한 업무를 줄여달라는 등)는 전혀 지키지 않은 채 일을 대신 떠맡게 되는 동료에게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이 오히려 자신은 사이드로 많은 걸 하고 있다는 걸 과시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예의’라는 정의가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예의가 없는 것이다. 짐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서서 드는 것은 내가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다. 그렇게 당연히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함께 있는 사람들 간의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모범을 보여야 어린 사람들도 새로 들어온 신입들도 보고 배울 것이라고 어렸을 적부터 당연하게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예의 없는 것이 정당화되지 말아야 한다.

기본적인 예의와 업무에 대한 책임은 갖추고 밀레니얼 스피릿에 대해 얘기하자. 업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사람한테 야근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에 있어서는) 하지만, 본인의 ‘무책임함’을 밀레니얼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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