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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Nov 14. 2019

대표가 원하는 사람

스타트업에서 프로잡일러로 살아남기_프로대답러편

대표가 물어본다.

지금까지 예산은 어느 정도 소진했어요?

마음속에서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정확하게 하려고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항목별로 내용별로 상세하게 기입해서 적어놨는데, 아직도 보지 않았군. 다른 부서는 하나도 안챙가는데 영수증까지 다 상세하게 스캔해가지고 넣어서 챙겨놨는데, 왜 도대체 보질 않는 거야. 안 그래도 지금 예산 처리하느라 바빠주겠는데 이걸 왜 갑자기 묻는 거야.


이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뾰족한 대답이 나온다.

“그거 예전에 공유드렸던 스프레드 시트에 있고요. 지금 계산해보면 되는데 지금 할까요?”

대표는 예상치 못한 날카로움에 무안했는지 나중에 보자고 한다. 대표가 아주 나이스 한 케이스다.


이런 대답은 우리가 주니어일 때 혹은 지쳐있을 때 혹은 대표나 사수가 매우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일 때 자주 나올 수 실수이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이렇게나 꼼꼼하고 완벽하게 정리했는데 그건 안 보고 왜 굳이 말로 물어보는지 화가 날만도 하다. 내가 준 링크 한 번만 클릭해서 열어보면 되는데 그 클릭 한 번이 그렇게 귀찮은 건지 손가락이 부러진 건지 아님 대표 손가락엔 황금 가루가 뿌려져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대표가 기대했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네, 대표님, 총 2억의 예산 중, 2019년 11월 13일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1억 5천6백4십5만 6천2백17원 사용했으며, 이는 약 75.46% 정도 사용한 것으로 나옵니다.

뭐,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대표라면 이런 직원 무서울 것 같다. 그렇다면 대표는 과연 어떤 대답을 원했을까? 내가 대표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아래와 같은 대답이었으면 충분할 것 같다.


네, 지금까지 약 75% 정도 사용했어요. 구체적인 액수 필요하시면 제가 오늘 내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아주 담백하고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예스맨을 멀리하라고.


현명하게 올바른 말을 할 줄 아는 조조가 멋진것이러고.


맞는 말이다. 예스맨은 본인의 실력과는 관계없이 사회적인 아부 능력에 기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게 올바른 것은 아니다.


대표도 상사도 사람이다.


물론, 내가 열심히 작성한 내용 다 꼼꼼히 보면 좋겠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준 서류 말고도 수없이 많은 것들을 보고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보게 하려면 필요한 결론만 눈에 띄고 싶게 만들어서 전달하던가 아예 포기하던가 해야 한다.


어느 상사도 내가 힘든 걸 들어줄 수는 없다.(아마도 한 두 번은 들어주겠지.)


적시적소에 원하는 대답을 적절히 센스 있고 간단하게 딜리버리 하는 것도 능력이다. 내가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려면 딜리버리 능력부터 기르자.

 


대표의 입장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 만 고민해보자.

이것은 대표뿐만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 상대방이 과연 어떤 답변을 원하는지 가는 하고 이에 맞게 적절한 수치와 결론을 섞어 쉽게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3가지 정도로 추려보았다.



 첫 번째

바로 대답하지 말고 생각한다.

누군가 무엇을 물어보면 특히 그 상대방이 상사이거나 어려운 사람일 경우, 바로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지 않고 대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섣부른 대답으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답변을 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늦어도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 게 백배 천배 낫다. 질문이 오면, 바로 대답하기 전에 꼭 생각을 하자. 생각할 시간을 벌고 싶다면, 상대방의 질문을 먼저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다.



 두 번째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수치화하려 한다.

수치가 적절히 섞인 대답은 그 말의 신뢰도를 한층 높여준다. 되도록이면, 수치를 많이 사용하려 노력한다. “많이 있어요.” 보다 “대략 90개 정도 있어요.”가 훨씬 높은 말의 신뢰도를 가진다.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아라.


글 초반에 언급했던 것처럼 대게 질문자들은 아주 세세한 수치를 바라고 물어본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없는 말을 지어내서 하는 것은 나쁘지만,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은 엄청 정확하지 않아도 숫자로 대답하는 것이 전문성 있어 보인다.



 세 번째

어려운 단어 대신 쉬운 단어를 선택한다.

직장에는 어려운 단어들을 골라골라 사용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런 사람들은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 압도감을 선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문용어를 섞어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전략은 금방 들통난다.


오히려 어려운 개념을 쉽게 적절한 단어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대표는 어려운 단어로 압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적절한 단어로 그가 원하는 답변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에게 더 매력을 느낄 것이다.




위의 세 가지만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당신도 대표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에게 사랑받기 시작하면, 주변에 무례한 사람들도 등장할 것이다. 그 때 아래의 글을 읽어보기 바란다.

https://brunch.co.kr/@godori/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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