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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Jul 19. 2020

나보다 내 충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엄마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_친정엄마 편

지난 주말, 엄마의 엄마(너에게는 외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났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엄마는 얼마 전부터 오른쪽 어금니가 조금 아프다는 얘기를 했어. 그때부터 외할머니의 잔소리는 ‘왜 이를 잘 닦아야 하는지’, ‘이가 아프면 바로 치과에 가야 하는 이유’, ‘사람의 이가 튼튼해야 하는 이유’등의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 동안 이어졌지. 엄마는 너무나도 익숙한 패턴이었기에 이가 아프다는 말을 한 엄마 스스로를 자책하며 잔소리를 한쪽 귀로 흘려보냈어. 그렇게 귀에 딱지가 자리를 잡을 즈음, 외할머니는 잔소리 어택을 드디어 끝내셨지.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어.


그다음 날, 출근을 하고 있는데 외할머니한테 전화가 왔지. 엄마는 무슨 급한일이 있나 하고 전화를 받아보니 ‘치과 꼭 가라’는 말을 하려고 전화하셨다고 하더라. 그 이후로 매일 외할머니한테 카톡이 와.


치과 꼭 가라고.

 

보통 엄마의 잔소리는 엄마의 귀를 스쳐갈 뿐이었지.

엄마도 어릴 때는 이런 게 싫었어. 왜 나는 다 컸는데 아직도 애로 생각하고 잔소리를 하시는 것일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잔소리를 듣는 게 싫지 않더라. 심지어 기분이 좋더라고. 누군가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것을 너무 오랜만에 느끼니 그게 그렇게 반갑더라고. 엄마도 누구에겐 사랑받는 자식이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예전에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니 지비 너와 너희 아빠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엄마도 누군가에게는 걱정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해.


엄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여주고 그저 그런 푸념에도 누구보다 속상해해주는 그런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


엄마가 된 지금,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이 우리 지비가 아프면 잠도 못 자고 너의 상태를 살피고 지비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누구보다 속상해하고 있단다. 엄마가 되어보니 이런 귀찮은 보살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알았어. 이제는 외할머니도 나이가 드셨는지 귀찮음이 예전 같지 않아. 옛날 같았음 벌써 엄마를 위해 치과를 예약해주고 데려갔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   가끔 그런 과한 관심이 그립다.


언젠간 엄마도 너의 슬픔에 무뎌질 날이 오겠지?


그땐 너도 한 가정의 가장이겠지? 너도 누군가를 ‘과함 관심’으로 보살피고 있겠지?


그날이 오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날이 오면 엄만 참 슬프면서도 기쁠 것 같아. 네가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는 것에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엄마가 너의 가장 큰 버팀목이 아니라는 것에 참 허전할 것 같아.


남은 시간 동안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할게.


내일은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 이젠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그동안 받았던 관심을 돌려줘야 할 때인  같아. 엄마랑 함께 치과도 가고 엄마의 치아는 괜찮은지 함께 검사를 받아봐야겠어.


이제 가봐야겠다. 


5시간을 공원에서 놀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자지 않고 퍼즐 맞추기 놀이를 하자고 하는구나.


역시 너의 에너지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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