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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링주역 Mar 12. 2021

이분법 세계를 횡단하는 방법

<주역 세계관3> '사이'와 '적정'

©초록담쟁이






1. '암수 한 몸'은 괴물일까? '진보이자 보수'는 혼종일까?


나는 '00와 00 사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모종의 철학적 반성에서 출발한 오랜 사유 습관이다. 그 방법은 '00과 00의 사이'를 습관적으로 사유하는 훈련이었다. 예컨대, 어떤 사물이나 사태를 응시할 때 항상 목적의식적으로 대립 면에 있는 '대상'이나 '상황' 또는 '개념'을 상기시킨 후, 그 '사이'를 공상하거나 망상한다. 그 '사이' 안의 가능한 모든 변이나 변수들을 추측하거나 가늠해 본다. 그 과정에서 시선과 사유방식을 가급적 분절적이지 않고 총체적이게 하려고 애쓴다. '즈음'이나 '언저리'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까닭이기도 하다.1)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의 현실은 뇌피셜에서 설정하는 두 가지 관념적 상대값 사이의 무수한 '점占 중의 하나'로 실존할 뿐이다. 두 가지 관념적 상대 값의 극단은 대개 개념 또는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적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상적 개념 사이를 횡단하고 있는 변화무쌍한 실재들을 단순하디 단순한 두 개의 극단적 개념이나 관념의 가상 세계로 치환시켜버리는 데만 골몰했다.2)


내가 이런 철학적 반성을 시작하게 된 까닭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문제적 표현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한 시대 우파적 양상을 부정적이고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를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규정했던 것은, 당시의 판에 박힌 진영논리 속에서 허우적대는 정쟁에 갑갑해하다가 결국 <나는 좌파 + 우파> 라거나, 즉 <나는 암수 한 몸이다>라고 선언해버린 셈이었다. 

어쩌다 저렇게까지 절망스러운 자평을 하게 된 것일까? '사이'에 대한 오랜 사유 끝에 나는, 우리의 정치 논쟁이라는 것이 실재와 실존을 떠나 존재하는 관념과 이념의 세계, 즉 가상의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정치뿐이었으랴? 당시까지 풍미했던 철학적 논쟁의 대개가 그러했다.


그다음 내 질문은 왜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서 살게 되었을까?...였다. 지금 여기서 굳이 플라톤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무모한 논의는 생략하겠다. 다만, 이것만은 미리 짚어 놓고 가자. 언젠가부터 우리 세상을 지배해왔던 '이분법적 세계관'ㅡ 흔히들 서양식 세계관이라고 하는 ㅡ 때문이었다는 것. 

어차피 한 시대를 살아갈 뿐인 인간들의 집합이 세계를 총체적이고 전면적으로 인식해서 완벽한 현생을 일궈간다는 것은 판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탐구와 학습과 뇌진화를 통해 실존적 세계(인간이 속한 자연계, 우주...)와 인간계를 최대한 통일시켜 내려 한 의지의 결과였을 텐데... 지난 1~2백 년 간 우리는 그 노력을 어쩌면 게을리해 왔는지 모르겠다. 


양자물리학을 통해 미시세계를 들여다보며 전혀 다른 세계의 운동 법칙들이 발견되고, '복잡계' 이론이 성숙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계를 설명하고 움직이는 '인간의 정신연령'은 여전히 단선적이고 일차적인 과학혁명 ㅡ 코페르니쿠스 단계, 조금 더 인정해 준다 해도 겨우 뉴턴 단계 ㅡ에서 더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왜?

갑작스레 혁명 수준의 뇌진화를 겪다 보니, 그로 인해 생겨난 놀라운 과학 기술의 결과물들에 현혹되어 나르시시즘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인간계의 그런 잘남이 전체 세계를 잘 파악하고 그 흐름에 따라 적응해 온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아예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오만해진 자신들의 뇌 속에서 설계한 이상적 세계 속에 함몰돼 버렸다. 집단무의식 상태로,  좌-우 가릴 것 없이. 

그로 인해 비롯된 상징적인 참사가 바로 <좌파 신자유주의> 아닐까? 




2. 태극기 할매와 나


그러면서 우리는 서서히 '사이'에 숨어있는 실체적 진실을 감지하는 감수성을 상실해갔고, 그것을 탐지하는 감각기관은 퇴화되어 갔다. '도 아니면 모'거나 '좌파 아니면 우파', '보수 아니면 진보'라는 양극만 감각하고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나조차도 양 극단의 관념이나 이상 사이에 착점占한 '실존하는 진실'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암놈이거나 수놈의 하나일 뿐이어야지, 암놈의 호르몬을 보유한 수놈이거나 수놈의 호르몬을 사랑하는 암놈일 수는 애초에 없는 것이다. '암 수 한 몸' 따위는 원시 생물계에나 존재 가능하지 진화된 하이퍼 생물인 나에게는 절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be를 설명하는 서술어인 '남아 있지 않다'가 아니다. 당위-should를 설명하는 '않아야 한다'라는 서술어를 썼다.)


평상시에 '좌파적인 나'는 어느 날 평화시장 한구석에서 광화문의 태극기 할매 중 1인하고 뜨개질하고 킬킬거리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존재여서도 안된다. 설령 멋모르고 같이 희희낙락 어울렸다가도 그 할머니가 태극기 부대임이 확인되는 순간! 내가 광화문 촛불 중 1인임을 들키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주홍글씨 낙인을 찍으며 하롱하롱 결별해버릴 수 있는 그런 존재여야 한다. 

그런 칼 같은 전선을 거부하고 어느 한나절 평화시장 구석에서 태극기 할매의 뜨개질 수업 삼매에 빠진 나를 드러내 보이는 순간, 나는 <암 수 한 몸>의 괴물이 되거나, <진보이자 보수>인 혼종이 된다. 

혹은, <좌파 신자유주의자>인 개념 없는 지도자가 되어버리거나, 단지 '성전환 수술'때문에 군 복무에서 배제되고 혐오에 시달리다 어느 날 '숨진 상태로' 발견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돼버릴지도 모른다.3)



3. 'one of them'과  'only one' 사이


우리는 누구나 양 극단에서 대치하는 대립적 존재 또는 개념 사이를 횡단한다. 그러나 늘 양 극단 중 어느 한 쪽에만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경계를 허물고 오락가락하는 순간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디아스포라4)가 돼버린다는 두려움이 본능처럼 장착되어 있어서일까? 아니, 괴물이나 혼종이 되어 최종적으로는 참사로 이어지는 비극적 운명들을 현실에서 자주 만나 학습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어떤 갈등 상황에 대면할 때 얼마나 세련되지 못한 모습으로 대처하는가로 드러난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해법이라고 내놓는 꼴들 좀 봐봐. 얼마나 단순하고 고답적이여? 난 이제 창의적인 해법이란 거는 웬만해선 기대조차 안 해. 왜냐하면, 니들은 무려 최소 12년씩을 '모범 답안' 제작형 인간으로 교육당해 왔으니까." 

자칭 '조선의 힙한 한량'의 원형을 만들어가는 중이라 자부하고 있는 신지박사는 요즘 '쫌 지난' 페미니즘 배틀에 '뻑가 계신' 상태다. 애들이 이런 깊은 주제를 어떻게 이렇게 발랄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냐고~ 대단한 세대라고~ 난리부루스 중이시다. 

이 힙스터 한량은 힙한 폼으로다가 최소한 20대들만큼 힙한 속도로 스마트폰을 뒤적거려 San E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잠시 므흣한 표정으로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수첩을 꺼내 뭔가를 휘갈겨 쓴다. 그러고는 San E가 블라블라 떠들어대는 스마트폰과 함께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우리가 얼마나  '모범 답안' 제작형 인간들만 양산하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테스트해볼 수 있어. 자, 여기 배틀들에 참전 한다 치면, 니 입장은 뭐여? 어디쯤 서 있을껴?" 



"헉~. 저한테 왜 이러세요. 엉엉"

"멍돌이 너는 오롯이 너만의 의견과 해법을 가지고 있냐고? 제3의 해법, 창의적 해법, 전혀 뜻밖의 답안... 같은 거 말야. 여혐만도 남혐만도 아니고, 동양식만도 서양식만도 아니고, 보수만도 진보만도 아니고, 평등만도 공정만도 아닌 거. 새로움만도 익숙함만도 아니고, 니편만도 내편만도 아닌 그런... 오로지 고유한 니 위치를 잡아냈냐고."

아! 살짝 멍때림의 순간이 왔다. 사실 그동안 나는 신지박사로부터 받은 질문 항목의 대부분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이 언론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입장 중 하나의 편이었을 뿐이다. 그 외에 다른 '제 3의 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구태여 내 사고 회로에 입력된 적 없는 사유 과정이었다.  


"자 봐. 이상과 이데아와 '~주의'와 신념, 이데올로기 같은 고정된 가치를 강조하고 지지하는 사회라면 어떨까? 당위적인 should형이 중심인 '가상현실' 사회를 상상해봐. 그런 곳에서는 '신박한' 해법들이 쉽게 창조되지도 않겠지만, 더러 그런 아이디어가 나와도 구조적으로 미리 다 억눌려지고 걸러지게 돼. 밖으로 표출되는 목소리는 오직 '선명한 깃발' 언저리에 있는 모범답안들 뿐일겨."

그렇다. '더 창의적이고 더 포괄적인 제 3의 길을 찾는 과정'이라는 논쟁과 토론의 본래의 뜻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 나를 선명하게 벼리는 과정'으로 변질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 결과 논쟁적인 어떤 사태에 직면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승자가 되기 위해 '먼저 상대를 나쁜 프레임 속에 함몰시켜버리'거나 '먼저 좋은 프레임을 선점해 버리'는 것일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쟁점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대로, 실사구시가 강조되고 개인이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취향과 사상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회를 상상해 봐봐. 이런 be형 '있는 그대로' 사회는 좀 다를 거여. 왜? 그곳에는 '바람직한 집단적 모범 주의'에 알레르기 올라오는 사회 부적응자들이 많아서 웬만해선 '모범답안'을 못 만들 테니까. 대표 선수가 누구겠냐?"

"장자...라고 말씀하실꺼져ㅎㅎㅎ?

"그래. 장자 ㅋㅋㅋ. 어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장자 행님을 소환한다고 상상해봐? 그 양반이 내놓을 답변을 상상해보라고~. 하나하나 얼마나 신박하고 독창적이겄냐~. 황당하고도 기가 막히기는 또 오죽할까? 아마도 마구마구 여기 인간들의 영감을 자극하게 될걸? 왜냐면, 그 행님이야말로 수시변통 처세의 달인이거덩." 

"수시변통하면 창조적으로 변할 수 있다구요? 오늘 구라 수준이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닌감여?ㅎㅎㅎ" 

"뭐래~? 진짜 우리도 할 수 있다니깐. 심지어 멍돌이 너도 할 수 있어!! '수시변통'은 우리가 앞으로 열공해나갈 역의 핵심 가치이자 핵심 원리니까. 곧 실전 편 들가면 점괘마다 계속 응용하고 연습하면서 되새길 거거덩." 


국어사전에서 '수시변통'을 찾아봤다. 

隨時變通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일을 처리함. <중용中庸>에서는 시중時中(때에 맞춤).

"그때그때의 상황"은 易의 괘가 처한 국면을 통해서 간접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각 괘의 괘사, 효사가 일러주는 고대이래 축적된 연륜과 지혜의 팁들을 통해 학습하고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易에 대한 대강의 공부가 끝날 즈음이면, 아마도 우리는 더 이상은 경직된 모범답안 따위나 제출하는 'one of them 인류'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신지박사 말대로 신박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황당해서 웃기기라도 한 답안 정도는 내놓을 수 있는 'only one 인류'로 진화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박하다'는 '신지박사하다'의 줄임말인가요?"

신지영감은 대꾸 한마디 없이 벌떡 일어나 '문꽝'하고 나가버렸다.  




4. 중화(中和)와 시중(時中), 그리고 통나무로 돌아가기


"슝스리(웅심력熊十力_중국 현대 유학자)는 '<중용>은 본래 <주역>을 풀이한 책'이라고 했어."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여?"

"역을 공부하는 까닭이 뭐야? 세계(자연)의 변화와 작동 구조를 익혀서, 적정한 인간의 대응 방식을 찾아가기 위한 거쟈네. 역의 괘가 안내해주는 최적의 경로... 말야. '최적'이 뭐야? 가장 적정하다는 거쟈나."

"그러니까, <주역>과 <중용>을 연결하는 것이 '최적'이란 말인가요? 그게 대체 뭔 말이래요규규?"

"조만간 다시 자세히 얘기할 거지만 일단 간단히 말하면... 역의 핵심인 중용 정신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적정성의 원칙'이 된다... 이 말이지, 뭐긴 뭐야. 최적점을 찾아가는 연륜과 지혜의 세계관. 그게 바로 중용이고, 그런 중용의 세계관을 가지고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주역이다..."


'중용'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적정성'이라는 것은 중용을 '균등함'으로 오해하는 경향을 차단하기에 꽤 쓸모 있을 것 같긴 했다. 중용은 '기계적인 균등'의 문제가 아니라 '유기적인 밸런스ㅡ균형'의 문제다.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해갈 정도의 간격과 차이. 심지어 그것이 '차별'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쪽의 존재 자체를 절멸시켜버릴 정도가 아니라면, 존재 간의 균형 자체를 붕괴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상식의 세계에서는 용인될 것이다. 이런 '용인 가능성' '참을 수 있는 한계-수인한도'... 그 '사이'의 범위 안에 착점해내는 지혜가 곧 '중용'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혜를 제대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현대어가 '코로나'로 인해 차츰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제서야.

적정성. 적정한 거리, 적정한 격차, 적정한 차이(차별 아닌).

긴장하되, 서로를 멸하지 않을 거리. 망가지되, 사라지지 않을 궤도.



정리하자면, 'only one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은 ①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사유하기를 훈련함으로써, 세계를 인식하는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에서 탈피해가는 ‘중화中和’5)와, ② 수시변통하는 판단력과 실천력을 길러 합리적 사고와 행동에 도달해가는 '시중時中6)'을 통해 이뤄진다. 이 두 가지가 바로 곧 <중용>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또, '변화'를 그 중심에 두고 있으므로 [역리(易理)의 세 가지] 중 하나인 '변역'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보면, 易에서 그 인식 방법과 사유 방법, 그리고 수행의 원리와 방법만을 추출해놓은 것이 <중용>인 셈이다. <주역(실전서-각론)> 안에서 운용되는 역의 정신과 작용 원리를 모아 풀이해놓은 책(철학서-총론)인 것. 그래서 <중용>을 <소주역>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중용>이든 <주역>이든 공부의 목표는 동일하다.

총체적 사유로 세계를 있는그대로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 무엇을, 어떻게 할지 '때맞춰'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떻게?

같은 양의 양전하와 음전하가 하나가 되면 전체로는 전하를 가지지 않고 '중화'되듯이,5) 숙명처럼 외눈박이의 시선을 타고났지만 상생하고 협력할 친구나 공동체 속에서 외눈의 숙명을 '중화'시켜 자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응전해가듯이... 끊임없이 소박한 통나무7)의 상태를 회복하는 사유와 삶을 연습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사유방식과 합리적실천력은 어느날 하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신지영감이 늘 강조하듯 지난하고 지속적인 공부 '과정 그 자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역>을 공부하고 활용하는 방법8)을 2가지로 말했다.

- 일이 없을 때는(일상적으로, 지속적으로...) 역리(易理, 역의 이치)를 공부하고

- 일이 있을 때는(움직일 때, 판단할 때...) 변화를 살피고 점을 해석한다.


"읽고, 또 읽고, 연습하고, 응용하고, 훈련하고, 또 읽고, 연습하고... 몸에 익히고."

나른한 오후 햇살이 퍼지는 마당에는 장닭 두마리가 잡아먹을 듯 한참 기세를 다잡으며 대치 중이다. 어느새 관람 모드로 태세 전환한 신지영감이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린다.

"'학습(學習)'의 習자는 어린 새가 날개(羽)를 퍼드덕거려 스스로(自→白)날기를 연습한다고 해서 '익히다'는 뜻이 되었지. 마침내 날아오르기까지 어린 새는 몇 번이나 푸드득거리기를 반복하고 반복했을까?"







1) 들뢰즈는 ('내재성의 평면'을) "세계는 주체나 객체도 아니고, 의식이나 사물도 아닌 궁극적으로 중간적인 성격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 보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이미지는, 주체와 객제 사이에 연속적으로 이어진 무한 이미지들의 흐름 가운데 어느 한 지점이나 단면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동결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이미지가 그 흐름의 중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기실 연속체의 무한소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한시의 비밀_시경과 초사 편_김근>


2) 예컨대 이런 경우이다. "공자의 "거짓됨 없이 솔직하다"라는 말은 『시 삼백』의 감각성에 대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도덕적 속성을 표현한 말로 인식된 것은 한나라의 경학자들이 『시 삼백』을 『시경詩經』으로 경전화하여, 『시 삼백』에 흐르는 초월론적인(낭만적인) 시적 감각들을 도덕성이라는 보편자로 환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환원될 수 없는 차이를 동일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어떻게든 생존을 위해 거대한 집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중국인들의 욕망 때문이다." <한시의 비밀_시경과 초사 편_김근>


3) "2020년 1월 성전환(남→여) 수술 후 군에서 강제 전역 당한 변희수(23) 전 하사는 1년 남짓 한 시간을 홀로 보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여군' 직업군인 복직을 희망했으나 군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1호 군인의 꿈은 죽음 앞에 물거품이 됐다.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기에 아직은 좁았다. 변 전 하사는 지난 3일 오후 5시 49분께 충북 청주시 상당구 아파트 9층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8일 이후 연락이 끊긴 점을 이상히 여긴 상당구 정신건강 센터의 신고를 받은 119구급 대원이 강제로 문을 열고 집 안에 진입, 차갑게 식은 그를 발견했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 후에 나올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패 상태에 미뤄 숨진 지 수일이 지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청주=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변 전 하사에 대한 육군의 강제 전역 처분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육군참모총장에 전역 처분을 취소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육군은 적법한 행정처분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머니투데이]


4)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로(spero)가 합성된 단어로, 이산(離散) 또는 파종(播種)을 의미한다. 본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유민)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5) 중화(中和)

①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 섞여 각각의 성질을 잃거나 그 중간의 성질을 띠게 함. 또는 그런 상태. 예) 여야 주장의 중화. ② 감정이나 성격이 치우치지 아니하고 바른 상태. 호랑이같은 눈인데도 그 가운데도 중화의 덕이 느껴졌다고 한다. ③ 같은 양의 양전하와 음전하가 하나가 되어 전체로는 전하를 가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일.


6) 시중(時中, timing)

때에 맞추어서 올바른 자리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즉 때를 알아서 처신을 할 줄 아는 것이다.

“군자가 중용을 지켜감에 있어서는 군자로서의 생각과 말과 그 행동이 그때를 가장 잘 맞추어가는 일이요

소인이 생각하는 중용은 체면이나 예의나 염치없이 아무 때 아무 데서나 거리낌 없이 자신의 처지와 이익만을 따라 사는 것이다.(君子之 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 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중용>

*도올선생은 '거리낌 없이'를 '기탄 없이'로 해석하며, 중용적 삶이란 '기탄 있는 삶'이어야한다고 설명한다.


7) 통나무_<노자>에서 쪼개어져 쓸모 있는 것들로 사용되기 전의 본래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분별 이전, 도, 태극 등을 은유한다.

"道는 항상 (억지로) 행함이 없으면서도(無爲) 하지 않음이 없으니(無不爲), 군주가 그것을 잘 지킬 수만 있다면 장차 만물이 저절로 길러질 것이다. 저절로 길러지는 데도 인위적으로 하려 한다면(欲作) 나는 이름 없는 통나무로 누를 것이다. 이름 없는 통나무로 진정시키면 장차 욕심이 없어질 것이니, 욕심이 없어져서 고요해지면 천하가 저절로 바르게 된다."<노자 37장>

"통나무가 비록 작을지라도 천하의 누구도 감히 신하로 삼을 수 없다. 군주가 만약 이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장차 스스로 손님이 될 것이다(만물자빈萬物自賓). 백성은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균등해질 것이다."<노자 32장>


8) "군자가 한가히 거처하면서 살펴야 하는 것은 역에 대한 서술이고, 즐기면서 완미해야 하는 것은 효사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편안하게 거처할 때는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미를 살피고 그 괘와 효사를 보며, 일이 있어 움직일 때는 변하는 것을 살피고 점을 완미한다." <주역_계사전_상_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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