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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Mar 28. 2019

'머무는' 이방인의 삶

어디에도 나의 집은 없다

서울의 첫 얼굴을 기억한다.

어릴 때에, 문경에 살았던 우리는 종종 차로 네 시간을 달려 서울 이모집에 놀러 가곤 했었다. 이모의 집은 88 서울 올림픽의 주무대였던 잠실에 있었고, 그 일대는 제법 깨끗하고 넓고 높고 늘 사람들의 생기로 북적이는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첫 모습이다. 별다른 건 없었다.

나는 그저, 지방 소도시의 어느 직장에서 백만 원 대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여직원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미련 없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기로 결심했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란다. 언제나 차 조심, 사람 조심하거라. 서울 애들은 다 새침데기라던데 가서 친구 잘 사귀어야 한다. 귀찮아도 밥은 잘 챙겨 먹고, 자주자주 전화해야 한다."


어린 딸을 떠나보내면서 부모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손에 들려주며 걱정을 늘어놓는 엄마를 보며 잠시 코끝이 찡했지만, 망설이지 않고 돌아섰다. 나는 그렇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아니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긴 여행을 떠났다.

낯선 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취직을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타지인'인 듯 아닌 듯, 서울이라는 도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늘 손톱을 세우고 살아왔다. 그렇게 새침데기라던 서울 애들보다 더 새침데기가 되어야지- 하고 작정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는 부모님의 말씀처럼, '방어'는 곧 습관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잘 취하지 않았고, 늘 취한 사람들을 챙기고 멀쩡한 걸음으로 귀가해 말끔히 씻고 침대에 눕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심한 감기몸살에 걸려 끙끙 앓아누웠을 땐 괜한 서러움에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엄마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밤샘 근무를 하고 아침 첫 차로 퇴근해 잠이 든 후 저녁 어스름 녘에 깨어나는 날이면 점점 회색빛으로 물드는 창문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날이 많았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서울의 모습은 화려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회초년생 시절엔 월급의 절반 정도를 월세로 썼고, 꿈꿔왔던 문화생활을 즐길 시간적 여유도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퇴근길, 칸칸이 불이 켜진 고층아파트를 보고 있노라면 저 중에 내 집 한 칸 없다는 게 서글펐고,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가끔씩 환멸을 느끼기도 했었다. 별 하나 없이 나쁜 공기로 흐리기만 한 하늘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았다. 삶은 역시나 드라마가 아니었다.



서울은 '이주자'의 도시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 중에서는 부산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PD도 있었고, 아버지가 배를 타는 선장인 후배 작가도 있었다. 경상북도 문경에서, 강원도 태백에서, 전라북도 정읍에서, 제주도 서귀포에서. 목적도 이유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주자들이 이곳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은 묘하게도 배제되어 섞이지 못하는 곳. 서울은 이주자들에게 그런 도시였다.

그렇다고 쉽게 돌아갈 수도 없다. 태어난 고향에도, 살고 있는 도시에도, 마음을 완전히 붙이지 못해 늘 떠돌아다니는 마음.

언젠가 문경 집에 갔다가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지나치는 조령산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일명 '문경새재'라 불리는 그 고개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정도로 험준하다고 해 그 이름이 붙었다. 현재는 영남대로 옛 과거길이라고도 불리는데, 옛날에 영남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이 꼭 넘어야 하는 관문이었다고 한다. 산세가 어찌나 험한지, 그 고개를 넘지 못해 과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얘기가 있다.

한양에 가서 출세해보겠다고 한 달, 두 달을 걸어 고개를 넘는 그 옛날의 절실함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려 문경에서 서울까지 단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길게 뻗은 터널을 지나면서 생각했다. 서울로 가는 우리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서울 생활 12년 차. 마음은 여전히 이방인으로 떠돌고 있지만, 어차피 인생은 여행이라 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저 아주아주 긴 여행 중, 조금 오랜 시간을 이 도시에 머물고 있는 것뿐이다.

정착도, 이별도 예고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 부재중일 때 빨리 다시 돌아와 함께 일하자는 연락을 해주는 사람도 있고, 고향 집에 다녀오면 아버지 건강은 좀 괜찮아지셨니 라고 따스하게 물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마음들을 나누면서, 이방인의 여행은 날마다 조금씩 풍족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들이 하나씩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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