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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Apr 02. 2019

더 이상 엄마의 김치를 버리지 않기로 했다

김치 그리고 어른의 상관관계

내가 몇 살 때부터 김치를 먹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나에게 김치는 그저, '맵고 맛없는 채소'일뿐이었을 거다. 어른들은 김치를 잘 먹는 아이를 보면 "우와 너 김치를 참 잘 먹네! 대단한 아이구나"하고 칭찬한다.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은 아이가 한 뼘 더 자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김치를 먹게 되고, 또 좋아하게 되고, 매 끼의 밥상에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김치가 필수품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옆집에서 뚝딱뚝딱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외출할 때 보니, 옆집에 누가 이사를 오는 모양이었다. 활짝 열린 현관문 사이로, 앳된 얼굴의 여자와 그녀의 부모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보였다. 중년의 남자는 걸레로 방을 닦고 있었고, 중년의 여자는 현관 안에서 보자기를 풀러 반찬통들을 꺼내고 있었다.

새록새록 옛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독립을 해서 타지에 나와 살게 되었을 때, 엄마는 주기적으로 나에게 이것저것을 챙겨주었다. 배추김치, 무말랭이, 깻잎장아찌, 고추장, 심지어는 참치캔까지. 다양한 먹을거리를 비롯해 '사다 쓰면 다 돈'이라며 샴푸와 치약 등의 생필품까지 바리바리 싸서 손에 들려 보내곤 했다.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 짜증 났고, 막상 가져온 반찬들은 잘 먹지도 않고 냉장고에서 썩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냄새나는 반찬들을 버려야 하는 일도 정말 스트레스였다.

나는 어차피 집에서 밥 먹을 시간도 없고, 필요하면 마트에서 사면 되니 제발 반찬 좀 안 싸주면 안 되냐고 엄마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부턴가 엄마가 진짜 나에게 반찬을 싸주지 않게 되었다.

영화 <엄마의 공책>

8년 전쯤에 내가 하던 아침 토크쇼에 김미경 강사가 출연한 적이 있다. 해당 회차의 콘셉트는 '모녀 열전'이었고, 김미경 강사를 비롯한 몇 명의 연예인이 자신의 친정엄마와 함께 출연해 입담을 자랑했다. 녹화 대본을 쓰기 전 출연자들과 전화 인터뷰를 하는 도중, 김미경 강사가 물었다.

"작가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직 이십대죠?"

나는 그렇다고 했고, 뒤이은 강사님의 말은-

"나는 내가 어른이 됐다고 느낀 순간이 언젠 줄 알아요? 엄마의 김치를 버리면서 처음으로 아깝고, 슬프다는 감정이 들었을 때예요. 작가님은 아직 모르겠죠?"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됐으나 나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20대 초중반이었고, 그녀는 나보다 스무 살 이상이 많은 40대 중후반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 시간은 흘렀고, 자취 10년 차에 다다르자 나는 사 먹는 밥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다양하고 화려한 외식 메뉴들을 즐기면서도, 소박하지만 제대로 된 집밥 한 끼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가끔 김치는 아주 소량으로 사서 먹었는데, 마트에서 파는 각 브랜드의 김치는 다 먹어봤고, 심지어는 아는 호텔 요리사에게 부탁해서 받은 김치, 시장 반찬가게에서도 사 먹어봤지만 어딘지 모르게 늘 입맛에 맞지 않았었다.

그래서 얼마 전 문경 집에 내려갔을 때엔 정말 오랜만에 엄마에게 김치를 싸 달라고 했다. 그 반찬통을 쇼핑백 가장 아래에 넣은 다음, 그것을 들고 고속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오는 내내- 그 무게가 이상하리만치 예전만큼 무겁지가 않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반찬통을 풀러 보니, 김치는 위생봉투 네 겹에 싸여있었다.

혹시라도 김칫국물이 새어 나오기라도 할까 봐, 냄새 때문에 내가 곤란해하기라도 할까 봐, 그렇게 꽁꽁 싸매 손에 들려 보내는 엄마의 그 예쁜 마음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처음으로 그 김치가 정말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고, 아까운 줄도 모르고 수많은 김치들을 버렸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것을 버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가 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처럼, 내가 30년 넘게 먹어왔고, 나의 입맛에 최적화된 엄마의 음식들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나로 자라게 한 건 아닐까. 그럼에도 소중함을 몰랐다니.

나이가 들수록 엄마를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에도 가슴이 아파오는 날들이 많아진다. 하물며 이젠 살다 살다, 엄마의 김치까지 나를 아프게 하는 날이 왔다.

어린 시절 처음 김치를 먹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한 뼘 더 자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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