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중독, 상처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

자존감 낮은 사람들의 위험한 연애방식

by 가희


"저게 고추를 달고 태어났어야 하는데."

나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이미 세 살 터울의 언니가 있었으므로, 또 딸이라는 이유로 나의 출생은 다소 실망스런 축복, 이라는 역설이었다 한다. 할머니는 어린 나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면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겠다 말했고, 사람들은 엄마를 볼 때마다 아들을 하나 더 낳으라고 말했다.

태생부터 환영받지 못한 그 시대의 둘째 딸들은, 내내 비교적인 관심 부족 속에 자란다. 언니의 옷을 물려받기 때문에 취향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성장 과정을 담은 사진도 많지 않다. "해봤더니 별 거 없더라"가 대부분이라,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모의 로망 같은 것은 첫째 때 이미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우리집은 가난했고,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혼자 라면을 끓여먹었고, 텅 빈 집에서 드라마 '청춘의 덫'의 재방송을 보며 오후 수업을 하는 언니를 기다렸다. 어른이 될 때까지 언니와 같은 방을 썼는데, 엄마 아빠는 그 방을 '내 방' 아닌 '언니 방'으로 규정했다. 바쁜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기대도 관심도 가져줄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스스로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연애는, 때로 위험하다.

나는 열다섯 살 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10년 이상, 꾸준히 남자를 만났다. 나를 사랑해준다 싶으면 쉽게 연애를 시작하고, 사랑이 깊어지다가 식으면 이별하고, 적당히 힘들어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다른 사람을 만났다.

남자 없이 못 사는, 즉 '연애중독'의 증상은 대부분 '결핍'에서부터 시작된다. 성장과정에서 지나치게 외로웠다거나, 가족의 애정이 부족했다거나, 아니면 우정다운 우정을 나눠보지 못했다거나. 그러한 결핍을 연애로 채우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연애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지,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거다. 그래서 폭력적이거나 바람기가 많은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헤어진 다음에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힘들어한다든가, 이른바 '남자 때문에 망하는 인생'을 살게 되기도 한다.

나의 연애중독은, 다행히도 그렇게 되기 전에 극적으로 치료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나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내 공간을 가꾸기 시작했고,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의 삶을 꾸려나갔다. 일을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니 여행을 가고 싶으면 항공권을 예매할 수도 있었고, 취미를 가지고 저녁을 활용하는 법도 차차 배워가게 되었다.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걷는 일이 즐거워졌다. 늘 바닥에 붙어있었던 자존감의 그래프가 그렇게 차차 위로 올라갔다.

그 무렵, 사랑은 늘 다른 사랑으로 잊으려 했던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침대에 누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이별을 슬퍼하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밤길을 걸었다.

혼자여도 괜찮았다.

불필요한 연애를 비로소 끊을 수 있었던 건, 자존감과 자기애를 회복하면서부터였다. 그렇게 나는 30대가 되었고, 이제는 사랑에 눈멀어 나쁜 남자에게 덜컥 시집갈 나이를 지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하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상처에서부터 시작된 연애중독이라는 마음의 병. 그것을 이겨내는 힘은 소소한 마음가짐이었다. 혼자 보는 영화 한 편, 혼자 마시는 맥주 한 모금,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내 만족을 위해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일. 조금만 용기를 내면 될 일이었다.

그냥 내가 나를 사랑하면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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