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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희 Apr 11. 2019

솔직함, 그 폭력성에 관하여

가장 비겁한 감정의 폭력

예전에 한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지나치게 솔직한 어느 출연자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다.

대본 리딩을 하면서는 "이 부분은 이해가 안 되는데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죠?"라고 딴지를 걸기 일쑤였고, 촬영 중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피디님 이거 왜 해야 돼요? 전 하기 싫은데요. 바꾸죠." 하며 지나치게 빼는 바람에 촬영을 끊어가야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버릇처럼 투덜대다 보니 촬영장 분위기도 좋지 않았고, 점점 스태프들과 다른 출연자들의 짜증 게이지도 올라가고 있어 늘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담당 피디와 나는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6개월 동안, 녹화 전날에는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걱정 때문에 불면에 시달려야 했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일찍 녹화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종종 그 연예인에 대해 "그 사람 어때?"하고 묻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머뭇거리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쉽게 정의하지 못했었다.

진짜 진상이야! 라고도 말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좋은 사람이야. 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한참을 고민한 뒤에 내가 찾아낸 그녀의 캐릭터는, '그냥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솔직할 뿐이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녹화 때마다 그녀를 달래 가며 촬영하느라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친한 선배 언니에게 이러한 고민들을 토로했다. 이러이러해서 정말 힘들어요. 녹화 때마다 정말 죽겠어요. 라는 하소연 끝에 역시나 내가 한 말은-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솔직할 뿐이지. 였다.

그런데,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선배가 던진 한 마디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고 말았다.

"가희야. 나쁜 사람이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게 바로 나쁜 사람인 거야. 그 사람은 악의 없이 드러낸 솔직함이라도, 그 말로 인해 네가 상처 받고 힘들었으면 그건 명백하게 나쁜 거야."

너무도 멋진 그 위로의 말에 나는 분명 감동을 받았으나, 한편으로 반성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내가 그녀를 나쁜 사람이라 단정 짓지 않았던 건, 나 또한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욕심이 더 많았고 한껏 예민했었다. 일을 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채우기 위해선 다른 사람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막말을 하며 따진 적도 있었고, 그것으로 인한 다툼 또한 여러 번 있었다. 분명 그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서도 "솔직하게 말한 게 잘못이야? 참는 사람이 바보인 거지"라고 주장하곤 했었다.

주변 사람들만 봐도, 솔직하고 직설적인 자신의 성격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 눈물을 흘리거나 꼬리를 내린 일을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과장하고 남을 작게 만드는 것, 그건 분명히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일 텐데 말이다.

솔직한 건 나쁜 게 아니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았다면 그것은 폭력과도 같은 행위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 비겁한 폭력. 눈으로 보이지 않는 상처라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자신만의 편견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폭력', 말로써 가슴에 비수를 꽂는 '언어의 폭력'이 있듯이, '감정의 폭력' 또한 여러 가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분위기로 한 사람을 집단에서 따돌리는 경우, 연인에 대한 사랑이 식은 한 사람이 차마 헤어지자 통보하지 못하고 교묘하게 이별을 강요하는 경우, 칭찬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너를 까고 있어'가 여실히 드러나게 비꼬는 경우.

솔직함 또한 어쩌면 이러한 감정의 폭력이 아닐까.  물론, 입 밖으로 나올 때에 어떻게 포장이 되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너의 의견은 정말 엉망이야."가 아닌, "이런 부분들은 조금 아쉬운데, 다르게 해 보면 어떨까? 이건 어때?" 정도의 배려가 있는 솔직함. 아마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살아왔던 걸까. 된통 당해보고 나서냐 비로소 찾아온 자기반성의 시간.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솔직함을 가장한 폭력성 짙은 비수가 될지, 아니면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면서도 상대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예쁜 말이 될지,  그것은 어쩌면 한 끗 차이 일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말 한마디로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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