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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희 Apr 26. 2019

엄마의 꽃놀이

누가 꽃이고, 누가 사람이야?

봄이 깊었다.

고향집 앞에 다다르자 달큼한 사과꽃 향기가 훅 하고 코 끝을 어지럽혔다. 내가 떠나 있었던 사이, 어느덧 가지마다 풍성하게 자라난 초록 잎들 위에는 눈송이처럼 소복이 꽃잎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팝콘을 마구 흩뿌려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코 푼 휴지를 뭉쳐서 나무에 잔뜩 매달에 놓은 것 같기도 한 그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계절이 가고 또 오는 것에 감탄했다. 과수원 옆길로 들어서며 신이 나서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촘촘하게 맺혀있는 사과꽃 사이에 파묻혀있던 엄마가 사다리를 타고 그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어?!" 하고 대답했다. 새하얀 꽃들 사이로 반가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가 있는 사과나무 근처에 바짝 다가가 얘기했다.

"거기 있으면 어떻게 해~

대체 누가 꽃이고 누가 사람인 줄 모르겠네!"

엄마가 큰 소리로 웃었다.


사과꽃, 문경


지난 주말, 결혼식이 있어서 문경에 다녀왔다. 참 좋은 계절에 야외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를 보며 정말 다행이고 또 좋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봄이라서 모두가 행복한 것 같았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4월임에도 떠나갈 듯 떠나가지 않는 찬 기운이 계속됐고, 거기에 갑작스러운 더위가 공존하는 듯한 이상한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고향집에 가서야 비로소 진짜 봄이 깊어가고 있구나-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사과꽃은 정말 정말 예쁘다. 사람들이 구경하지 못해 안달이 난 도시의 그 벚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예쁘다.

그런데 농사꾼들 사이에서 그 예쁜 사과꽃은 '봄의 전령'이 아닌, '고생의 시작'으로 통하기도 한다.

사실 과일 농사는 거의 사시사철이 농번기다. 꽃이 피면 그 꽃을 따줘야 하고, 수시로 약을 치고 적과를 하고 비닐을 씌우고 또 벗기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진정한 성수기(수확)를 맞을 수가 있다. 그 뒤에는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나무도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는데, 그 사이에도 농부는 쉬지 못하고 가끔씩 가지치기라는 작업을 해줘야 한다.

그렇게 비교적 한가로운 시기인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또다시 본격적으로 농부의 일 년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무에 꽃이 열리고, 벌이 와서 수정을 하면 후에 거기서 과실이 열리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에서 꽃은 진짜 무지막지하게 많이 열리고, 그곳에 열매가 다 달릴 경우에는 나중에 적과(열매를 솎아내는 것) 작업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꽃을 따내 줘야 한다는 거다.

며칠 동안 문경 집에 있으면서 그런 엄마의 봄 생활을 함께 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밭으로 향했고, 해가 지기 직전까지 일했다.

하루 종일 꽃을 따고 들어온 엄마의 온몸에는 흙모래가 버석거렸다. 종일의 노동 끝에 들어와서는, 아무리 말려도 허리를 부여잡고서 집안일을 했고, 밤이면 연속극을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슬그머니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내가 결혼식에서 받아온 튤립 부케를 보며 예쁘다고 웃음 지으며 유리병에 꽂아놓았다. 엄마도 꽃을 참 좋아하는 '여자'였는데.

일을 하면서 엄마와 비슷한 연세의 일반인 출연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녀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 예쁜 철쭉의 접사라든지, 화사한 색의 등산복을 입고 꽃놀이를 가서 브이- 하고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그러나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비교적 한가했던 겨울(그것도 2년 전이다), 서울에 가요무대를 보러 왔을 때에 찍은 사진에 머물러있었다.

농부 엄마는 그 흔한 꽃놀이 한 번 가지 못하고, 꽃을 따내느라 이 좋은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

5년 전, 시내에서 간판가게를 하던 부모님이 처음으로 사과 농사를 시작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우와! 멋지다!" 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도 읽고, 가을이면 맛있는 사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 누구에게나 있는 '귀농'의 로망 같은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멀리서 봐야 예쁜 사과꽃처럼 말이다.

하루에 몇 천 개의 꽃잎을 따내야 하는 단순노동. 그것은 빼도 박도 못하게, 그저 시간이 지나야 끝나는 작업이었다. 엄마에 대한 연민이 또 한 번 깊어지면서, 나는 오늘 서울로 떠나는 순간까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이번 주 내내 심상치 않게 꾸물거렸지만, 끝내 비는 오지 않았던 하늘이 야속했다. 낮에 비라도 와야 엄마가 좀 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서울로 출발하자마자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로소 조금 마음이 놓였다.

서울에 도착해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사거리에 있는 큰 빌딩이 허물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단지 나흘 떠나 있었던 사이에 말이다. 어딘가의 어떤 세상은 이렇게나 빨리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꽃놀이, 아니 꽃과의 전쟁이 연속인 엄마의 하루는 더디기만 하고, 그냥 묵묵히 견뎌야만 하는 것이었다.


예쁜 농부 엄마


하지만 다행인 건, 현재의 엄마는 내가 태어나 본 모습 중 가장 멋진 '워킹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보험회사에 다닐 때도, 마트에 다닐 때도 본 적이 없었던 열정적인 그 모습.


개밥을 주고 있는 나를 불러 "가희야 이리 와 봐. 이 꽃을 왜 따줘야 하냐면..."하고 사과에 대한 지식을 뽐내면서 일장연설을 하기도 하며, 허리춤에 라디오를 차고서는 큰 소리로 이선희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일하기도 한다. 작년 가을에는 맛있게 자라난 사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 언젠가 농사가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엔, 아빠와 함께 일할 때 또는 밖에서 사람들과 일할 때보다 혼자서 조용히 일하는 게 좋다고, 보람도 있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그런 엄마는 꽃보다 예쁘다.

엄마가 고생하고 또 마음을 쏟은 만큼, 올해에도 꼭 엄마를 닮은 예쁘고 맛있는 사과가 열리길- 엄마의 하루하루가 매일 꽃놀이 같기를- 나는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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