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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Mar 28. 2020

황당했던 라오스의 첫인상

라오스가 이런 곳이었어...?


 누구에게나 가끔은 필요한.


단 한 번도 어딘가에 매여 있지 않았지만, 늘 어딘가에 매여 있었다.     


나는 프로젝트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2년을 근무하는 이름하여 ‘반 프리랜서’다. 직장인들처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근무 시간은 ‘상식적인 선’을 지켜야 하는데, 해야 할 일만 ‘반드시’ 알아서 하면 출퇴근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게 일하다 보면 8시간 근무보다 업무량이 많긴 하다. 나는 10년 넘게 그렇게 생활해왔고, 그런 근무 형태에 대한 장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줄곧, 비교적 자유로웠고 비교적 불안하기도 했다. 닥쳐오는 업무에 충실하고 또 닥쳐오는 여유는 즐기면 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삶이었지만, 때로는 그 경계가 불분명할 때가 있었기에. 하루 이틀 단위로 모드를 바꾸며 맺고 끊음을 해야 하는 삶이기도 했다.    


2019년 한 해는 역마살이 꼈던 건지, 여러모로 통 정착하질 못했다.    


고정 프로그램 없이 일했지만 여기저기 하는 일이 많아서 두 배는 더 바빴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잠깐의 틈이라도 나면 1박 2일 또는 3박 4일씩, 어디론가 떠나지 못해 안달복달이 났다. 그렇게 짧은 일들과 짧은 여행을 반복하던 중, 큰맘 먹고 열흘 정도 서울을 떠나 있어 보기로 했다. 동행자와 날짜를 맞추고 보니 앞뒤로는 일이 꽉 차 있었고 심지어 여행을 가서도 틈틈이 일을 해야 했기에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가끔씩 왠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그런 때였고, 비행기 티켓을 끊자마자 거짓말처럼 일 걱정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정신도 없이 여행을 위해 앞뒤로 죽어라 일했던 게 더 맞지만.     


아무튼 우리는 가기로 했고, 그때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여행이었으니까. 지나간 삶을 위해서도,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도. 누구에게나 가끔의 여유와 휴식이 꼭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드디어, 라오스!


나에게 라오스는 로망이었다. 혹자들은 라오스가 무슨 로망씩이냐 되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그랬다.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분명한데, 그동안은 여행을 많이 못 해봤고, 그렇다고 당장 장기 여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도 않았다. 한 군데 오래 머물며 깊게 도시를 음미하는 게 좋은데, 최대한 시간을 낸다 해도 열흘이었다. 물론 열흘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게 아니었다. 맘먹고 여행하면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부지런히 많은 것을 보고 올 수도 있는 시간인 건 알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는 건 싫었다.    


여러 가지를 따져 보았을 때, 만약에 내가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여행을 간다면 그 첫 목적지는 라오스였으면 했다. 비교적 가깝고 부담 없으면서도 확실히 이질적인 문화가 있는 곳. 초보 배낭여행자도 쉽게 여행할 수 있으면서 쉽게 그들의 삶에 스며들 수 있는 곳. 내가 상상하는 라오스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조금은 용기 있는 여행자가 되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라오스였다. 마침 11월이라 건기가 막 시작되었고, 대학교 방학 전이라 크게 붐비지 않는다고 했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한 달 전에 티켓팅을 하고, 그사이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여행 계획을 짜며 설레는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라오스의 과격한 첫인사


오후 5시 35분 서울을 떠난 비행기가 5시간을 날아 드디어 라오스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픽업 밴을 타고 비엔티안 한인 쉼터로 가서 달러를 킵(kip)으로 환전하고 유심을 구입했다. 우리는 야간 밴을 타고 방비엥으로 이동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현지 시간 새벽 1시(시차 –2시간)에 도착할 것을 대비해 맥주도 한 아름 미리 샀다. 본격적으로 여행할 생각을 하니 점점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시간을 더 달려 도심인 비엔티안에서 시골 마을인 방비엥으로 향했다. 제대로 된 가로등이 없어 풍경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실은 풍경이랄 것도 없이 계속 산길이었다) 비포장도로인 탓에 밴은 심하게 흔들렸지만 꼬불꼬불한 그 길 틈틈이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도, 한밤의 어스름 속 흐릿하게 보이는 이색적인 산의 풍경들도. 그 모든 것이 여행의 시작에서는 그저 기분 좋은 생경함으로 다가왔다.    


설레는 마음에 잠도 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달려온 길. 드디어 밴이 우리 숙소 앞에 도착했다. 숙소는 메인 여행자 거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같이 밴을 타고 온 일행들 중 우리가 가장 먼저 하차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라오스에 도착해 만난 사람들, 같이 밴을 타고 온 사람들도 모두 한국인들이었기 때문에 숙소 앞에 짐을 내리고 둘만 남겨지자 비로소 ‘이제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를 내려준 밴을 떠나보내고 숙소의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비엥에서 3일 동안 묵을 숙소는 방갈로 형태의 독채 빌라였다. 엄청나게 고급은 아니었지만, 방비엥의 물가를 따지자면 그래도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적당한 예산 안에서 아끼면서 여행하자 했지만, 방비엥에서만큼은 여유롭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잡은 숙소였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우와!’하고 감탄을 내질렀다. 깔끔하게 관리된 키 큰 야자수 정원 사이로 남송강이 보이고, 고즈넉한 방갈로 숙소 몇 채가 나란히 서 있었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였고, 시간이 시간인 만큼 빌라의 불은 모두 다 꺼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너무도 신났던 우리는 어깨에 멘 배낭이 무거운 줄도 모른 채 정원을 지나 맨 안쪽에 위치한 리셉션 동으로 향했다.


그 숙소 입구의 낮은 이랬고..
저녁은 이랬지만..


그런데 점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조그만 나무 집으로 만들어진 리셉션 동은 불이 꺼져 있었고, 당연히 사람도 없었다. 처음에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앞에 있는 벨도 눌러보고, 노크도 해봤다. 점점 마음은 불안해졌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똑똑- 하던 노크는 쾅쾅-이 되었고, 숙소의 모든 동을 다 뒤져봤지만,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황당했다. 늦은 입실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확실하게 도착 시간을 고지해뒀던 터였다.     


이곳은 처음 와보는 나라였고, 한밤중에 도착해 바로 숙소에 왔다. 비엔티안에서 밴을 타고 바로 숙소에 왔기 때문에 당연히 방비엥의 지리도 몰랐다. 숙소를 예약했던 아고다를 통해서도, 구글에서 검색을 해서도 호텔에 전화를 해봤지만 당연히 받지 않았다. 그렇게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시간은 어느덧 1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던 우리는 거리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때엔 어둠밖에 없었다.. 그와중에 달빛은 얼마나 밝은지.


불행 중 다행으로 방비엥 시내는 넓지 않았고, 구글에서 찾아보았더니 걸어서 10분 거리에 아직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한식당이 있었다.  


아까는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배낭이 갑자기 무겁게만 느껴졌지만, 지체할 틈 없이 우리는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방비엥의 밤거리는 낯선 여행자에게 두렵게만 느껴져 우리는 종종 가던 길을 멈춰야만 했다. 방비엥은 말 그대로 완전 시골 마을이다. 늦은 시간이라 거리에 당연히 여행자들은 드물었고, 종종 스쿠터를 타고 뽈뽈뽈 지나가는 현지인들만이 있었는데, 그때의 심정으로는 모두 폭주족처럼 보였다. 지나가는 길을 막고 서있는 개들도 얼마나 무서웠던지. 온몸이 땀범벅이 됐던 이유는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찾아간 한식당의 사장님은 너무도 친절했지만, 아쉽게도 수확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을 알아봐 주었지만 이미 만실이었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가게 되었다. 다시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눈앞에 보이는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은 다 들어가 봤지만 이미 만실이거나, 마찬가지로 프런트에 아예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체념을 하고 노숙까지 염두하고 있었던 찰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한 숙소의 프런트에 간이침대를 펴놓고 자고 있는 한 직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얼마나 반가웠던지, 지나가던 개조차 무서워서 망설이던 내 모습은 어디 가고 그 사람을 막 두드려 깨우고 짧은 영어로 간절함을 표출했다.    


호텔엔 다행히 트윈룸이 남아있었고, 2인 30,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묵을 수 있게 된 우리는 방으로 안내를 받으며 연신 ‘컵짜이!(고맙습니다)’를 외쳤다.    


룸은 나쁘지 않았다. 건물이 오래됐지만, 오히려 한국이나 선진국들에 새로 지어진 호텔들보다는 면적이 훨씬 넓었고 침대도 나름대로 푹신했다. 다음 날 아침 풍경이 기대되는 큰 창도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의 여행처럼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맥주캔을 땄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와 환전한 돈도 새어보고, 다음 날 방갈로 빌라에 어떻게 항의를 해야 할지 얘기도 나눴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웃었다. 생소한 경험으로 인한 신기함과 즐거움의 웃음, 황당함의 웃음, 피곤함의 웃음이 뒤섞여있었지만, 둘 중에 누구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 싶은 밤이었다. 강서구 우리 집에서 방비엥의 호텔까지는 너무나 긴 여정이었지만, 아직까지는 라오스에 실망하긴 이르니까.     


맥주를 마시자 노곤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잠들기 전, 사실은 생각했다.


‘시작부터 이럴 일이야? 우리 앞으로 괜찮을까...?’        


우리를 구제해주었던 삼만 원 호텔의 아침뷰.




※ 이 여행기는 2019년 11월, 누구나 마음껏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가깝지만 먼 과거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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