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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Mar 28. 2020

어쩌면 계속 살아보고도 싶어

라오스에서 죽을 순 없잖아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


라오스 첫날부터 문 닫힌 리셉션 소동으로 고생했던 우리는 다음 날 아침 눈뜨자마자 우리를 배신했던(?!) 그 호텔을 찾아갔다. 어떻게 따져야 할지 파파고 번역기를 미리 잔뜩 돌려놓고는 쿵쿵 화가 난 발걸음으로 지배인을 만났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었고, 그저 1시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힘들었다. 방황하다가 다른 호텔을 찾았다. 보상해줘라. 였고, 호텔 측의 입장은 리셉션 옆 동에서 상주하는 직원이 있었지만 벨 소리도, 노크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거다.    


어쨌든 아고다를 통해 1박에 대한 금액은 환불해주기로 했고, 미안했는지 지배인은 빌라 중 유일하게 리버뷰인 방을 안내해줬다. 룸은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넓고 시원하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사실 방비엥의 모든 숙소가 조금 습하고 벌레가 많다고 해서 예약 당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인 룸 컨디션에 금세 신이 나서 어제의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이른 입실도 할 수 있었던 우리는 바로 짐을 풀어놓고 여행자 거리로 나섰다. 이제야 진짜 여행의 시작이었다.         




죽음의 남싸이 전망대


버기카를 빌려서 블루라군에 가기로 했다. 블루라군은 1~3이 있는데, 1이 방송에 소개되어 사람이 제일 많은 곳이고, 2와 3은 그 후에 생겨났다. 그중 3은 한국인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소 인공적이지만 한적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라고 했다. 물놀이를 본격적으로 하지도 않을뿐더러, 긴 동선을 싫어하고 천천히 여유를 즐기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비교적 가까운 블루라군 1만 갔다 오기로 했다. 심지어 버기카는 그냥 기분으로 타는 거고, 실은 자전거보다도 느리다.    


대신 블루라군 1과 가까운 ‘남싸이 전망대’라는 곳을 들리기로 했다. 방비엥은 카르스트 지형의 뾰족한 산들이 유명한 곳인데, 이름 없는 수많은 봉우리 중 하나였던 ‘남싸이’는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찾기 시작해 얼떨결에 전망대가 된 곳이다. 정확한 높이도 알 수 없고, 길이라 할 것도 없이 높다란 바위들을 밟고 성큼성큼 올라가야 하는 곳이지만 방비엥의 시골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 했다.    


버기카. 비싸지만 한 번쯤은.


버기카로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려 남싸이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일행은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여 초입에 있는 원두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시 뒤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남싸이 전망대는 엄청 높지만, 경사가 가팔라서 올라가는 데는 2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고 했다. 즉, 정상에서 즐기는 시간까지 합해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는 게 블로거들의 정보였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죽음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블로거들의 정보였다.      


블로거들의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전망대까지 올라가는데 정확히 25분이 걸렸다. 이래 봬도 산의 고장 문경 출신에, 평소에 걷는 것도 엄청 좋아하는데. 문제는 절대로 속도를 낼 수가 없다는 거였다. 거짓말 안 보태고 스무 걸음 올라가고 1분 숨 고르기를 해야 하는 정도의 경사였다. 한 번이라도 산을 타 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산을 오른 지 5분이 되었을 때도 20분이 되었을 때도 ‘그냥 포기하고 내려갈까?’하고 고민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하는 게 등산이기도 하다.    


나는 남싸이에서도 그랬다. 포기하기 아까운 마음 반, 저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멋진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 반. 그렇게 나는 내일의 내 다리를 포기(?)하기로 하고 꾸역꾸역 산을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산 정상. 약수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은 평상 하나와 아슬아슬한 포토스팟만이 있는 곳. 그냥 말 그대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돌계단을 짚고 밟고, 마치 기어가듯  발로 남은  계단을  올랐다. 고작 다섯 계단 아래와는 확실히 다른 높이감과 바람이 느껴졌다.


너무 힘들어서 대체 뭘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단 한 뼘.
선택은 나 자신의 몫.   


‘고통의 오르막 뒤에 마주한 풍경. 그 얼마나 황홀할까’라며 기대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눈앞의 풍경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 여기는 높고, 산과 논이 보이는구나. 여기는 라오스구나. 라는 생각 정도가 다였던 것 같다. 그 외에 아름답다든지, 웅장하다든지 하는 좀 더 깊은 감상은 없었다. 아니 사실은 그저 무섭다는 생각이 나를 더 지배했다.    


제대로 닦여지지도 않은 돌들이 뾰족하게 솟아난 산 정상. 조심스럽게 그 위에 올라 발끝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산 정상, 반걸음만 내디디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거리였다.     


우습게도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랬다.    


실은 나는 그다지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삶에 충실해 뭐든 열심히 하긴 하지만, 아직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누구나처럼 ‘죽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고, 나에게는 죽을 용기가 없어- 하고 묵묵히 힘든 시기를 이겨내기도 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수많은 청춘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죽지 못해 살아야’ 하기 때문에. N포세대라는 말이 생길 만큼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또 그 가운데서   성취를 찾고자 하는 삶. 모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싸이 전망대에서 나는 죽음 앞에 섰고, 비로소 그 죽음이 두려워졌다. 눈 딱 감고 몸을 뉘이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기가 무서웠고 또 싫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실은 산을 오르는 내내 그랬다. ‘아씨 힘들어 죽겠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혹시라도 발을 헛디딜까 조심 또 조심했다. 이렇게 삶에 대한 애착 또는 집착은 은연중에 드러나곤 한다.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한 차를 필사적으로 피하는 것. 놀이기구를 탈 때 안전장치를 몇 번이고 흔들어 다시 확인하는 것. 사실은 우리는 살고 싶었던 거다.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었던 것.    


하지만 잘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해 차라리 죽을까도 고민해보고, 말도 안 되는 지구 멸망을 기대해보기도 한다.     


우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게 조금은 더 잘살아 볼 순 없을까. 행복을 찾을 순 없을까. 사실은 정말 살아내고 싶은데.        




어쩌면 계속 살아보고도 싶어.
그들처럼이라면.


다행히 나는 그 산의 정상에서 죽지 않았고, 무사히 등산을 마친 뒤 다시 일행을 만나 블루라군으로 갔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잠시 물놀이도 했다.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버기카에 타자마자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그 와중에도 여행자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깔깔거리며 저마다 버기카와 스쿠터, 툭툭이를 찾아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숙소로 향하는 길, 굵어진 빗방울은 버기카의 바람을 만나 시야까지 괴롭혔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향하는 어르신들, 밖에서 놀다가 맨발로 돌아가는 아이들 모두 느긋한 발걸음이었다. 갑자기 쏟아진 비를 대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펴서 머리 위로 비를 가리는 사람도, 피를 피하려 달리는 사람들도 없었다. 비 오는 풍경 없이 사람만 봤을 땐 햇살 좋고 바람 좋은 봄날 같은 날씨가 상상되는 그런 모습이었다. 심지어 길가의 강아지도, 송아지들도, 닭들도 자유롭게 수풀과 찻길을 오갔다. 너무도 이질적인 그 풍경에,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여유롭게 만드는지 궁금해졌고 또 부러워졌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라오스의 평균 수명은 60세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너무도 자연 친화적인 삶, 그리고 열악한 의료시설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도, 어떤 것에도 욕심내지 않은 채 주어진 삶에 순응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간다. 불교에 공양하고 헌신하는 것도, 자신이 남자 또는 여자로서 태어난 것도, 심지어 날이 지옥처럼 덥거나 비가 많이 와서 농사를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순응한다고 한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너무 아등바등 살아왔고, 그래서 아무것도 순응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삶에 대한 애착,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게 아닐까.    


11월의 라오스는 평균적으로 한 달 중 이틀 정도 비가 온다고 했다. 그 비를 마치 몸의 일부인 듯 맞이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라오스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 순간을 즐기기로 결심했고, 신나게 소리치며 버기카로 빗길을 달렸다. 나는 정말 살고 싶었고, 그 순간만큼은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았으니까.        





※ 이 여행기는 2019년 11월, 누구나 마음껏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가깝지만 먼 과거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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