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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Sep 14. 2020

여행지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을 되찾을 확률

라오스 여행의 최대 고비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라오스 여행 4일 차. 3박4일을 머물렀던 방비엥을 떠나 두 번째 도시인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날이었다.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야간 슬리핑 버스를 타고 7-8시간을 달려서 가는 거였고, 둘째는 하루에 대여섯 번쯤 있는 밴을 타고 가는 거였다. 그리고 셋째는 비엔티안으로 밴을 타고 가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것. 우리는 두 번째 방법인 밴을 타고 가기로 했다. 방비엥에 머물면서 버기카와 카약킹을 예약했던 현지 여행사를 통해 밴을 예약했는데, 여행자 거리에 넘쳐나는 여행사 중에서 아무 곳에서나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같은 시간에 예약한 여행자들이 같은 밴을 타고 가도록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오스에 도착하던 날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으로 이동할 때는 한인 쉼터를 통해 원화로 예약했기 때문에 현지 물가를 고려하자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지불했다. 하지만 밤늦게 이동하는 만큼 안전이 보장되었고, 성능 좋은 밴을 타고 넉넉하고 시원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밴은 다소 구식이었고,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가득 싣고 가는 만큼 가격은 이전의 절반 정도로 저렴했다.    


방비엥을 떠나며. 흙먼지 가득한 이 길이 참 그리울 거야.


우리는 11시 밴을 예약했는데, 20분 전쯤 찾아온 기사가 호텔의 방문을 두드렸다. 우리 숙소가 여행자 거리 끄트머리에 있었기에 가장 먼저 탑승하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트렁크가 아닌 배낭을 가진 우리는 짐을 직접 들고 자리에 탑승해야 했지만 운전석 바로 뒤에 자리를 잡은 덕에 그리 불편함은 못 느꼈다.


방비엥 거리를 한 바퀴 돌자 어느새 밴은 여행자들로 꽉 찼다. 그중에는 라오스 현지인도 있었고 한국인 남학생들도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서양인들도 있었다. 건장한 그들 사이 가장 넓고 편한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자그마한 동양인 여자 둘이 앉아있으려니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밴은 어느덧 방비엥을 떠나 꼬불꼬불한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우리 고향 문경에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이화령 고개와 비슷했다. 청명한 날씨와 우거진 숲이 경이로워 열심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대다가 여느 여행자들처럼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데이라이트! 루앙프라방    


불편할 법도 한 차 안에서 목을 이리저리 꺾어가며 잘도 단잠을 자고 있던 여행자들 그리고 나.


창가에 앉아있던 나는 감은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다. 시간은 오후 네 시 반 즈음. 라오스도 계절로 따지면 늦가을이었기에 해가 그리 길지 않았다. 해가 막 기울어질 준비를 하며 내뿜는 그 강렬한 빛은 어느 나라나 똑같았지만, 눈앞의 풍경은 조금 생경했다. 대여섯 시간 동안 가끔 잠에서 깨면 눈앞에 보이는 건 첩첩산중뿐이었는데, 이제는 건물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길게 늘어선 건물들 사이로 우리의 밴이 탐험하듯 들어가고 있었다, 방비엥에서 보았던 시골집이나 호텔, 동남아 특유의 방갈로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옅은 아이보리색 건물들. 그 위로는 늦오후의 짙은 일광을 머금은 주홍빛 지붕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건물이 정확하게 같은 빛을 띠는 건 아니었지만, 마치 누군가 정해놓은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듯 약간은 불규칙한 그라데이션으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건물들이 낮은 탓에 지붕에 반사된 데이라이트의 눈동자와 마주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소담하지만 강렬한, 내가 반해버리고 만 루앙프라방의 첫 모습이었다.    


우리는 비로소 종착지인 어느 교차로에 도착했고, 각자의 자리에 구겨져 있던 여행자들이 기지개를 켜며 밴에서 빠져나왔다.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밴 중 여행자들이 기피하는 시간대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가 타고 온 11시 밴이다. 6시간이 걸리는 거리임으로, 이동으로만 하루를 다 써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슬리핑 버스를 타거나 오전 일찍, 아니면 오후 늦게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서두르기보단 조금 게으르게 출발해 느리게 이동하며 보는 풍경이 좋다. 지나온 여행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페리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밴에서 내려 각자의 배낭을 메고 길로 나서는, 우리처럼 게으른 11시 밴 여행자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행복한 여행이 되길!     


비교적 한산한 오후의 루앙프라방 거리.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초면에 앵글 난입 :)


우리 숙소는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이동했는데, 메인 거리에는 상인들이 야시장을 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우리 숙소는 야시장 1분 거리, 아침 시장이 열리는 길목에 위치한 [골든 로터스 플레이스]라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위치는 최상이었고, 웰컴드링크와 제법 괜찮은 조식이 제공되며 느낌 있는 공용 테라스가 있는 곳이었다. 조금은 습한 냄새가 났지만 트윈베드와 개인 욕실이 딸린 넓은 룸이 2인에 3만 원이니, 제법 가성비가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인자한 사장님과 영어로 농담을 할 줄 아는 직원이 있어서 편안하게 묵을 수 있다.    


우리는 짐을 풀고 테라스에서 맥주를 한 캔 마시고 바로 거리로 나갔다. 야시장을 구경하며 ‘이따 저거 사자!’를 연신 외치며 신이 나서는 푸드 스트릿으로 향했다. 야시장 샛길에 위치한 음식 전용의 작은 거리인데, 야시장의 명물인 코코넛빵을 비롯해 각종 열대과일, 라오스의 먹거리들을 판매했다. 거리의 끝부분에는 음식을 주문해 그 자리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노점들도 있었다. 이동하느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우리는 일단 음식과 맥주를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독특한 야시장의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꽤 들뜨기도 했던 것 같다.        



야시장에서 휴대폰 분실... 망했다!    


즐겁게 배를 채운 우리는 이제 쇼핑을 하기 위해 야시장으로 나섰다. 루앙프라방에서는 3박4일을 머무를 예정이었기 때문에 기념품은 일단 뒤로 하고 머리끈, 반바지 등 당장 쓸 수 있는 것들만 샀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머니를 만져보니 휴대폰이 없는 거다. 앞주머니에도 뒷주머니에도, 가방에도, 쇼핑백에도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져 일행에게 얘기했더니 크게 놀라며 사색이 됐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야시장 바로 옆에 있는 숙소에까지 가서 샅샅이 뒤졌는데 그 어디에도 휴대폰은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당했거나 아니면 식당에 두고 왔다는 것인데, 둘 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 소매치기면 다시 찾을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고, 식당에 두고 온 것이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밥을 먹은 곳은 일반 식당이 아닌 야시장 노점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그 주위로는 거지들이 서성거렸는데,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테이블에 남은 음식들을 봉지에 담아 가곤 했었다. 상인들은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나는 이 광경을 흥미롭게 쳐다봤던 기억이 나는 거다.    


정말 식당 테이블에 놓고 온 거면 이대로 끝.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행에게 너무 미안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여행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서로 앞다퉈 다시 식당으로 갔다. 앉았던 테이블을 살펴보니 당연히 휴대폰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못 봤다며 손을 저었다.    


우리는 절망했다. 아... 망했다.


휴대폰 잃어버린 곳
휴대폰과 맞바꾼(?) 음식


그런데, 갑자기 그 직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입가가 씰룩쌜룩 하더니 비로소 그 입이 씨익 하고 웃는 거다. 뒤이어 앞치마의 주머니에서 스윽 꺼낸 아이폰 하나. 내 거잖아!    


우리는 아아ㅠㅠㅠㅠ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주변에 있던 식당의 직원들이 우리를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고맙던지. 우리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며칠 동안 라오스에 머무르며 만났던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롭고 착했다. 그전까지는 방비엥이라는 시골 마을에 머물다 왔기 때문에 대부분 순박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사람들은 조금 달랐다. 여전히 착하지만 조금은 재치 있고 장난스러운 분위기. 도시에 온 지 단 몇 시간 되지 않았지만, 루앙프라방 여행의 초입에서 만난 사람이 그 직원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여행이 어찌 되든, 이것만으로 이 여행은 성공한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나는 행운아였다! (그 후 다시 휴대폰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루앙프라방에 들어오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주홍 지붕과 데이라이트. 어쩌면 그때부터 예감했듯, 나는 정말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질 것만 같아!




※ 이 여행기는 2019년 11월, 누구나 마음껏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가깝지만 먼 과거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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