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디선가 본 '쾌락과 행복을 구분 짓자-'라는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근데 쾌락, 행복? 이것은 같은 선상이 아닐까
쾌락의 정의는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 즉 쾌락은 순간적인 만족.
미디어나 책을 보면 종종 '여러분 쾌락과 행복을 구분 지으세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쾌락이 순간적 만족이라면 행복은 더 깊고 지속적인 무언가인 듯하다.
그런데 이 둘을 그렇게 깔끔히 무 자르듯 나눌 수 있을까.
(꽤나 극단적인 편)
쾌락이란 행복의 일부이고
행복이란 결국 작은 쾌락들이 차곡히 쌓여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나는 이 둘이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유다이모니아(eudaimonia), 즉 '좋은 삶'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쾌락을 넘어,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고,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쾌락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행복한 삶의 위해선 '적당한 쾌락'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인간 본성으로- 본능적으로 쾌락을 추구한다.
아이들만 생각해도 그렇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몸부림, 응애 하며 쏟아내는 울음, 맛없는 음식은 뱉어내는 행동.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의 오는 기쁨.
본성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쾌락의 순간순간들이 모여 "행복한 삶"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순간적인 쾌락은 배제하고 고결한 의미만을 좇는다면
그것을 과연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를 들자면, 나의 목표 A를 이루기 위해 음식을 먹는 즐거움, 노래를 듣는 즐거움, 게임을 하는 즐거움, 풍경을 감상하는 기쁨 등을 모조리 포기한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자기실현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삶이 전반적으로 무미건조하고 고통스럽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행복은 단순한 정신적 충만감이 아니라,
감각적인 쾌락과 의미 있는 삶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순간의 쾌락을 충분히 즐기되 그것이 장기적인 행복과 연결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잡는 것-
중용(中庸, the golden mean)
모든 덕목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소리치는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쾌락과 행복을 구분 지어라.라는 문장에서 직관적으로 떠올랐던 말의 뜻은
'질적 차이'였다. 그래, 쾌락에도 질이 있지.
갑자기 떠오른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그는 쾌락에도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단순히 육체적이고 즉각적인 쾌락보다, 정신적이고 지적인 쾌락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본 것이다. 쉽게 말해,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과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은 모두 쾌락이지만, 후자가 더 깊은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무작정 감각적 쾌락을 탐닉하는 삶을 ‘노예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래, 결론.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우리 삶의 쾌락을 장기적인 행복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택해야 한다.
순간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더 깊고 지속적인 기쁨을 찾는 것.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경험하고,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에
끊임없이 끊임없이
파고들어 답을 달며 꼬리질문을 이어가 보자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