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6에 쓴 글.
하루가 끝나갈수록,
나는 이상하게도 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이게 무슨 소리냐? 뭬,,,)
몸은 분명 지쳐 있고, 잠깐만 멈춰도 그대로 잠들 수 있을 만큼 피곤한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또렷한 생의 열감이 올라온다.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고, 기획안을 고치고, 마감과 일정의 압박 속에 시간을 밀어 넣듯 살아간다. 퇴근 후에는 학원에 가야 하고, 다시 학교 인턴십 과제를 하고, 교육봉사와 그 외 대외활동을 향해 손을 뻗는다.
일정만 놓고 본다면 분명 ‘버티는 삶’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삶을 버티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진입하고 있다’는 감각이 더 강하다.
예전에도 나는 늘 바쁘게 살았다.(물론, 아마, 비효율적인 바쁨이었을 것. 어라 혹시 지금도?) 바쁨 자체에서 오는 쾌감을 알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바쁨은 어디로 도달할지 모른 채 달리는 속도 그 자체의 도취감이었다면, 지금의 바쁨은 도착지를 가진 속도, 방향성을 가진 가속이다. 이 차이는 생의 밀도를 전혀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나는 움직이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내가 그린 챕터에 들어서고 있다”
이 자각이 지금의 나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회사는 나에게 노동 이상의 것을 준다. 이곳은 누가 정해준 정답을 수행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실제 시장의 언어로 사고하고, 현실의 질감 속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곧 전장이다. 더 이상 개념으로 배우지 않는다. 피드백은 곧 구조이고, 구조는 곧 현실이다. 이 안에서의 모든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체화된다.(그런데, 또 너무너무 고돼서 그런 것 같기도.)
그래서 피곤해도 허무하지 않고, 고단해도 의미가 빠지지 않는다. 의미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내게 딱 좋은.(?) 나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계획안 세계에 발을 디딘 자로서 감각을 확장하고 있다.
많이 자야 5-6시간, 물론 이 수면시간도 축복이라 부를 수 있다. 남들과 똑같이 바쁘고 똑같이 지치지만, 삶의 감정선이 ‘소진’에서 ‘축적’으로 바뀌는 순간, 인간은 이상하게도 기쁘다. 피곤함을 각오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랄까(?)
나는 지금, 소비되는 삶이 아니라 축적되는 삶 속에 있다.
이 감각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다. “나는 내가 선택한 서사를, 실제 세계에서 작동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고단한 하루를 끝낼 때마다,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세상이 나를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씹으며 내 언어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감각. 이 감각 하나가, 하루의 모든 피로를 ‘살아있음’이라는 단어로 정리해 준다.
나는 지금, 삶이 나를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을 전진시키는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오늘도 (개)피곤한데, 오늘도 행복하다. 그리고 이 말을 버티듯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언하듯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확신한다. 삶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