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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by 고은

하루 24시간 중, 유독 아침 시간을 좋아한다.

아침을 좋아하게 된 건,

하루를 '버티는 방식'이 아니라 하루를 '선택하는 방식'을 알게 된 뒤부터였다.


밤이 감정을 키운다면,

아침은 감정을 정리한다.


어제의 열정도, 어제의 후회도 모두 같은 속도로 희미해지는 시간.


그 무색한 순간 속에서야

비로소 나는 선택이라는 동사를 다시 꺼낼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은 정해진 흐름 안에서 흘러간다.
출근 시간, 회의, 업무 보고, 메시지 알림 등...-


하루는 ‘시작’이라기보다 정해진 틀에 접속하는 행위에 가깝다.

회사에 입사한 후로부터 더욱, 정형화된 일과에 무의미함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살아간다’기보다 역할을 수행한다는 감각에 익숙해지게 됐다.

로봇처럼 움직이진 않으면서도, 묘하게 누군가가 설정한 동선 위를 따라가는 기계가 된다.


그러다 문득,

아침만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스케줄이 나를 호출하기 전에, 아직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기 전,
나는 유일하게 ‘누군가의 역할’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느낀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창문을 여는 단순한 동작 하나에도
“방향을 정한 것은 나였다”라는 숨은 문장이 따라붙는다.


그 문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은 하루를 다르게 견딘다.

아침이 좋다는 말은 어느새 “나는 아직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선언과 비슷해졌다.

그 선언이 거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사소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이 꽤나 마음에 든다.
누군가가 짜놓은 동선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시간을 느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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