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매화가 데려간 봄

by 신은정

한 장의 매화가 데려간 봄



매화가 피었다

아직은

봉오리가 더 많은 계절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그을린 전각 사이

불씨처럼 번지던 붉음

꽃보다 먼저

내 마음이 피었다

친한 언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서울 봉은사에 매화가 피었다고.

도심의 빌딩 사이,

고요히 서 있는 절 마당에

붉은 꽃이 먼저 봄을 열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서울이 아니라 구례에 서 있었다.

오래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모집한 여행을 따라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찾았던 화엄사.

각황전 앞에 서 있던 홍매화.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봄을 맞았을 나무.

그날의 나는

꽃보다 설명을 더 열심히 들었고,

카메라로 풍경을 담느라

정작 내 마음은 천천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서울 봉은사의 매화 사진 한 장이

그날의 공기와 발걸음,

그 시절의 나를 고스란히 데려왔다.

기억은 늘 이렇게 돌아오는 걸까.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장면이

꽃 한 송이에 기대어

불쑥 문을 연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바빴고,

조금 더 서둘렀고,

조금 더 멀리 있는 무언가를 향해 있었다.

지금의 나는

꽃 앞에서 한참을 멈출 줄 알고,

사진 한 장에 오래 머물 줄 안다.

매화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피는데

그 꽃을 바라보는 나는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봄은 계절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자라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매화가 구례의 봄을 데려왔듯,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조용히 안아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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