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들어갔어? 우리 나이만큼의 배려가

by 신은정

친구의 남편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났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친구의 목소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담담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렸다.


사람은 너무 큰 슬픔 앞에서는 오히려 조용해진다.

나는 몇 번의 이별을 지나오며 그것을 배웠다.


대구에서 친구가 급히 올라왔다.

서울역, 3시 15분 도착.

갠적인 약속때문에 서울역으로 나가진못했다.

우리는 발인까지 함께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누군가의 마지막 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곁에 서 있는 일뿐이니까.


그런데 친구는 돌아가기로 했다.

3월에 결혼식이 많아 서울행이 잦을 예정이라,

일정을 무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잠시 망설임이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그 안에는 우리 나이만큼의 배려가 담겨 있었다.


서로의 몸을 알고,

서로의 사정을 알고,

그래서 더 깊어진 우정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친구가 나이탓인지 한것도 없는데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는 이야기와 이런저런 톡을 주고받았다.


오늘 아침, 나는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시시푸스 이야기를 읽었다

.

우리가 알고 있던 신화는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 일본 시인은 말했다.


형벌이 형벌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렸을 때의 기쁨.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질 때의 짧은 휴식.

다시 바위를 짊어지기 위해 내려오는 길에서

주변 풍경이 건네는 깊은 위로.

그 속에도, 분명히 선물 같은 시간이 존재한다고.

어제의 하루가 그랬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분명 형벌처럼 느껴졌다.

왜 이렇게 갑자기, 왜 이렇게 허망하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커피숖에서 나눈 이야기들

서울역에 내려주면서 아쉬운 작별.


슬픔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챙겼다.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순간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만,

그 사이에 우리가 서로에게 내어주는 시간은 소중하다.


마음은 아직도 앞서 달려가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예전 같으면 무리해서라도 발인까지 지켰을 것이다.


내일을 생각하며 돌아서는 선택도.

산을 내려오는 길도 삶이라는 걸.

슬픔을 온전히 끌어안지 못해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 마음 안에

이미 충분한 애도가 들어 있다는 걸.


시시푸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하듯

우리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반복 속에도 기쁨이 있고,

휴식이 있고,

짧지만 깊은 위로가 있다.

형벌이 형벌이 아니게 되는 순간.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잘 들어갔어?" 라고 묻는 바로 그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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