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먼저 오는 봄

by 신은정

휴대폰 갤러리를 열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골라 글을 써보려는 참이었다. 스크롤을 내리다 손가락이 멈췄다. 낙엽 사이로 고개를 내민 연한 분홍빛 야생화. 그 사진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몇 해 전 봄이었다. 친구가 산속에서 야생화가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며 사진기를 들고 가자고 했다. 사진을 찍으러 나선 건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스럭거리는 낙엽 소리를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이런 곳에 꽃이 있다고? 반신반의하며 따라간 끝, 친구가 갑자기 엎드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낙엽 사이로 연한 분홍빛 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것 같으면서도, 땅을 꽉 붙잡고 피어 있는 꽃. 코를 가까이 대야 겨우 느껴지는 은은하고 차가운 향. 흙냄새와 섞인 그 향이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혔다. 그날 처음 깨달았다. 봄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먼저 온다는 것을.

사진을 다 찍고는 조용필의 《들꽃》을 흥얼거리며 산길을 내려왔다. 한동안 분홍빛 야생화가 내 프로필 화면을 장식했었다.

며칠 전, 휴대폰에 낯선 알림이 떴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있었다. 첫 출간이라는 프로필이었다. 누구지? 하고 열어보니 고등학교 친구였다.

졸업 후 사십 년 만의 안부였다. 반가운 마음에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고,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문득 친구의 프로필을 열어봤다. 들꽃 사진이 가득했다. 한 장씩 넘기다 오래전 안양 어느 산길에서 야생화를 찾던 기억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야생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날 산을 헤매며 꽃을 찾던 마음도, 지금 이 봄을 맞는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꽃에서 봄을 보고, 오래된 인연에서 마음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도 조금씩 고요하게 피어난다. 봄은 늘 이렇게, 작고 여린 곳에서 먼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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