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려주는 커피한잔

by 신은정


딸아이가 커피머신을 하나 샀다.

캡슐 한 박스도 함께.

학교 보건실에 두고 보건 선생님과 같이 마시려고 준비한 것이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학급 수가 많아 보건교사가 두 명이다.

딸아이가 도움을 많이 받는 선생님이라 커피머신을 살까 고민하길래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럼 사서 같이 마셔.”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커피 한 잔만 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가져와 아빠에게 한 잔을 내려주니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커피가 나오니 남편이 무척 좋아한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커피정수기가 하나 있지만 고장이 잦았고, 캡슐도 비싸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내가 핸드드립으로 내려주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남편은 그냥 커피를 못 마시는 날도 많았다.

그러니 버튼 하나로 커피가 나오는 이 작은 기계가 얼마나 편하게 느껴졌겠는가.


딸도 그걸 느꼈는지 선뜻 학교로 들고 나서질 못한다.

딸이 집에 있는 토요일이었다.

갑자기 딸아이가 말했다.

“커피 주문 받습니다.”

아빠는 라떼,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라떼는 따뜻한 걸로 주세요.”

그러자 딸이 말했다.

“아이스로 드세요.”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핫으로 주문했는데요?”

딸이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여기는 주인 마음대로예요.”

아빠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럼 다음부터 커피숍 옮겨야겠네.”

나는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마 얼음 얼리는 거 사서 자랑하려고 그러나 봐. 당신 아이스로 타준다고 공처럼 얼리는 얼음틀 샀잖아.”


딸이 금세 말을 바꾼다.

“그럼 라떼는 얼마냐면… 5500원입니다.”

아빠가 놀란 척한다.

“너무 비싸네요.”

그러자 둘이서 또 가격을 흥정한다.

“그럼 3500원으로 할게요.”

“대신 샷 하나 더 추가하면 5500원입니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그 작은 카페 놀이는 계속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하던 소꿉놀이.

의사 놀이, 식당 놀이, 선생님 놀이.

역할을 바꾸어 가며 진지하게 놀던 시간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는데

놀이의 모습만 조금 달라졌을 뿐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장면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딸아이는 휴대폰을 보며 당근을 뒤적이고 있었다.

아빠가 집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게 커피머신을 하나 더 구입해

집에 두고, 지금 있는 것은 학교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빠한테 평생 공짜 쿠폰을 드리는 건 어때?”

딸아이가 바로 대답했다.

“좋아요. 아빠는 무료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빠는 우리 집 카페의

평생 무료 손님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자라면서 놀이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모양만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장난감으로 하던 소꿉놀이가

이제는 커피머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은 여전히 같다.

서로를 챙기고

함께 웃고

같은 시간을 나누는 마음.


어쩌면 우리 집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머신이 내려주는 커피가 아니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려주는 커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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