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에게 톡이 왔다. "엄마 생일이 4월 22일이야." 맞다. 환갑 생일이 다가온다. 가족들과 조용히 식사나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막내 시누가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1966년 3월 6일, 같은 날 태어났다.
시집와서 힘들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를 가장 많이 염려해주던 사람이 그 시누였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집에 시집와서 고생한 새언니, 노래나 글을 계속했으면 뭐라도 크게 했을 사람인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대단한 위로도 아닌데, 그 한마디가 오래 남는다.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가 생겼을 때도 시누는 먼저 나섰다.
"새언니는 아직 아이들 챙겨야 하니까 어머니는 내가 모실게요."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나는 아직도 다 갚지 못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 시누가 어머니를 모시다 암에 걸렸다. 내가 다시 모셔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시누는 이미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마지막을 앞두었을 때, 시누는 조용히 자리를 비워주었다.
"새언니한테 할 말 있으시면 하세요."
그 덕분에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전해지던 말.
"미안하다."
세 번이나. 그 장면은 지금도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
시누는 내게 친구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다. 속을 다 보여도 되는 사람, 그래도 괜찮은 사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곁에는 좋은 친구들이 있고, 나를 인정해주고 아껴주는 시댁 식구들이 있고, 뒤늦게 만난 글벗들이 있다. 이 모든 인연이 감사하다.
이번 환갑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퇴원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한 번 더 살아난 사람이다. 그래서 이 환갑은 내 인생의 첫돌 같다.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이제의 삶을 살아가 보려 한다.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감사하게. 그리고 이 날만큼은 시누와 함께 맞고 싶다.
같은 날 태어나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를 붙들어주며 살아온 우리. 말로는 다 못하더라도 그냥 나란히 앉아 밥 한 그릇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고모, 올해 환갑을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언제나, 늘, 항상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