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아

5분에세이

by 신은정



“엄마, 무조건 아아야.”

딸아이들은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라며

주문대 앞에서 한 번도 망설이지 않는다.

‘얼죽아’.

처음 들었을 때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말이다.

겨울 한복판,

패딩에 목도리를 두른 채

손에는 얼음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는모습.

그 장면이 SNS에서 퍼지며

“저건 선택이 아니라 신념이다”라는 공감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유머러스하게 부른 이름, 얼죽아.


나는 그 옆에서

늘 뜨거운 커피를 고른다.

여름에도 과일주스에 든 얼음을 조심스레 걷어낸다.

차가운 얼음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차가운 기운이 먼저 닿으면 맛이 흐려지는 것 같아서다.


오래전의 나는

커피 맛을 잘 몰랐다.

그저 쓰고, 마시면 잠이 깨는 음료라고만 생각했다.

카페에 가면 늘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커피를 주문할 때

케냐, 예가체프를 자연스럽게 고르던 언니.

그 모습이 유난히 멋져 보였다. 자기 취향이 분명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커피 맛을 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핸드드립을 배웠다.

같은 원두, 같은 양, 같은 온도의 물. 똑같이 내려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맛이 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커피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기억이

함께 섞여 나온다는 것도.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남은 커피는

베트남에서 마신 커피다.

족제비가 먹고 배설했다는

루왁 커피였다.

처음엔 웃으며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말이 없어졌다.

초콜릿처럼 달콤했고

쓴맛은 둥글게 감춰진 커피였다.

그 커피를 팔던 멋진 남자는

자신을 이병헌의 친구라고 소개했고

가게 한쪽에는

이병헌 사진이 홍보용으로 걸려 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의 커피는 의심할 틈 없이 완벽했으니까.

값은 비쌌지만 나는 두 봉지를 사 왔다.

집으로 돌아와오래도록 아껴 마셨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주기도 했다.

지금도 떠올리면

가장 먼저 향이 생각나는

내 인생의 최애 커피다.

코피 루왁으로

정성껏 내린 아이스 한 잔.

문득 그 커피가

무척 그리워진다.

오늘은 기억을 더듬어

커피의 향과 맛을

마음으로 먼저 음미해본다.


커피는

혀에 남기보다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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