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에세이
설렘의 주인이 되는 법
눈을 뜨자마자 양치하고 물 한 컵을 마신 뒤, '오늘 아침 메시지가 왔을까?' 하는 마음으로 카카오톡 창을 여는 그 짧은 설렘. 오늘로 그 시간이 끝난다.
함께하는 시간은 습관을 만들기엔 짧고, 포기하기엔 긴 시간이다. 아직 이 습관이 내 삶에 뿌리 깊게 내려앉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함께하는 모임의 힘에 기대고 있다. 누군가가 정해준 시간, 누군가가 건네는 문장 덕분에 내 루틴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다.
매일 아침 도착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글쓰기 프롬프트 이상이었다. 그것은 하루를 여는 의식이었고, 나를 깨우는 알람이었으며, '오늘도 쓸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는 증표였다. 그 메시지가 없는 내일 아침이 어떨지, 솔직히 조금 두렵다.
"목표를 정하고, 자기 의심을 버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가주 작가의 이 말이 한 해를 정리하는 이 시점의 나에게 유난히 크게 울린다. 생각보다 행동이 늦었던 시간들, 망설이다 놓쳐버린 순간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60년을 살아오며 깨달은 것이 있다. 완벽한 준비란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할 수도 있다는 것. 교통사고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일은 오늘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고명환 작가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죽기 전까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그래서 더욱, 행동하지 않는 것은 사치다.
올해 나는 엉덩이뼈를 잃었지만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아픔을 통해 e북 한 권을 구상하게 됐고, 아침일기 모임을 통해 매일 쓰는 힘을 얻었다. 60인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취다.
하지만 이제 안다. 꿈은 계속 변한다는 것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책을 내고, 혹시 베스트셀러에 올라가더라도 그 성취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새 꿈으로 교체된다.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꿈은 계속 변하고 그게 바로 우리 인간과 우주의 진리다. 멈춤은 위험하다. 행복하게 변하는 꿈을 찾아내면서, 도모하면서, 기대와 설렘으로 사는 것. 그것이 살아 있음의 증거다.
2026년의 나는 조금 덜 고민하고 조금 더 행동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아침일기를 쓰지 않는 날에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으로. 누군가의 메시지를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오늘은 무엇을 쓸까?" 물을 수 있는 사람으로.
오늘로 끝난 설렘은 이제 나 혼자의 몫이다.
그 설렘을 다시 만드는 일, 그건 결국 내가 얼마나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카카오톡 알림 대신 커피 향으로, 모임의 프롬프트 대신 창밖 풍경으로, 누군가의 격려 대신 어제보다 한 줄 더 쓴 나 자신으로.
설렘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 설렘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