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해야 되는 해다. 미루고 미루다 늘 그 해를 넘겼고, 그러다 보니 검진을 하지 않고 몇 년이 흘렀다. 하지 않은 이유는 게으름이라기보다 두려움 때문일 거다. 검사 후 알게 될 사실에 괜히 혼자 소설을 쓰고 있는 거다. 그동안 내가 남의 시련과 아픔에 담대하고 담담하게 격려랍시고 해줬던 순간들이 날 부끄럽게 만든다. 손톱 가시만 한 내 상처에만 예민했던 지난날이.
올가을 이후 갑작스레 우울한 소식들이 들려온다. 십 대 시절부터 내 우상이었던 J 언니의 교통사고. 횡단보도로 돌진한 차에 언니는 프리다 칼로처럼 온몸이 다 무너졌다. 중환자실에 있는 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기도밖에 없다는 것에 무력감이 든다. 얼마 전 동창생의 부고가 전해졌다. 동호회 수영 대회 나갔다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너무나 황망히 세상을 떴다. 친구의 죽음도 힘들었지만, 갑작스레 남편을 아빠를 자식을 형제를 잃은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지켜보는 것도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언니가 사투를 벌이고 친구가 떠났어도 나는 밥을 먹고 자질구레한 일에 웃고 화내고 걱정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이 아니고선 당사자가 아니고선 어쩔 수 없는 주변인밖에 안 되는 나의 한계에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이 떠올랐다.
제목을 모른 채 그림만 봤을 때는 뷰 좋은 곳에 밭을 둔 농부의 평온한 일상이 먼저 그려졌다. 그런데 찬찬히 그림을 들여다보니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밭 가는 농부 오른편으로 바다에 고꾸라져 허우적대는 다리가 보인다. 당사자에게는 위기일발일 그 순간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평온하게 자기 삶에만 집중하고 있다. 농부는 쟁기로 밭을 가는데 열중이고,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를 뻔히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낚시꾼은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게 태연스레 고기 잡는데 집중하고 있다. 양 떼를 돌보는 목동 역시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을 돌려 외면하고 있다.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저 그림의 제목은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이다. 그렇다면 물속에 빠져 생사를 오가는 이가 이카로스다.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동안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각기 제 할 일에 몰두해 있거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재난에서 등 돌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일상을 살아 나가고 있다.
플랑드르 화가인 피터르 브뤼헐이 살았던 플랑드르에는 "사람이 죽는다고 쟁기가 멈추는 법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누군가 인생에서 큰 재난과 슬픔을 겪고 있어도 다른 이의 삶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W.H. 오든의 <미술 박물관>이란 시 일부가 생각난다.
고통에 대해서는 그들이 틀린 적이 없었다.
옛 거장들, 그들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던가.
고통이란 인간에게 무엇인지,
왜 고통의 순간에
다른 누군가는 식사를 하고
누군가는 창문을 열고
누군가는 그저 무심히 걸어만 가고 있는지
바로 그 누군가가 돼서 나는 또 오늘도 무심히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